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유다서(114)

25.2.2. 위엄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지위와 존엄,’ ‘탁월한 명성,’ ‘초월적인 주권’ 등을 뜻합니다(출 23:27; 에 1:4; 사 33:21; 행 9:27; 유 1:25). 성경에서는 대부분 하나님과 관련해 사용되며, 주로 ‘영광,’ ‘존귀’와 함께 표현됩니다(신 5:24; 대상 16:27). 개역개정판에서는 ‘지극히 크신 이’(히 1:3; 8:1)로도 번역하였습니다. 서양에서는 왕을 부를 때 ‘폐하(Your Majesty)’라고 부릅니다. majesty는 라틴어 maiestas에서 왔는데. ‘당당함, 큼, 대단함(greatness)’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위엄이 있는 분은 홀로이신 하나님이십니다.  25.2.3. 권력(power)은 남을 복종케 하는 힘으로, 왕의 권력(왕하 13:8), 군사력(삿 8:21), 재물이나 보화(스 4:23) 등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 권력의 유한함을 지적하면서(렘 17:5) 참된 권력은 오직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벧전 5:11). ESV에서 번역한 dominion(통치(統治))을 찾아보았습니다.  통치는 지배자가 주권을 행사하여 국토와 국민을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최고의 통치자이며(출 15:18; 시 103:19), 이 모든 세상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 의와 공평으로 다스려진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삿 5:11; 대상 16:31; 시 93:1; 145:13). 그리고 이 세상을 의와 공평으로 영원히 다스릴 메시야의 통치를 약속하고 있습니다(사 32:1; 슥 6:12-13; 마 2:6; 계 11:15). 세상 모든 통치자는 최고의 권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은 존재로서(롬 13:1), 정의를 행하고 선을 장려하며 악을 징벌하여 백성이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통치할 책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벧전 2:13). 따라서 성경은 통치자에게 순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딤전 2:1-3). 물론 그...

유다서(113)

25.1.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  우리 구주는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상천하지에 하나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과연 그렇게 생각합니까? 이 글에서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을 무당을 섬기듯 섬기지 않습니까? 그저 나의 안위와 소위 말하는 복만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혼합종교를 만든 것처럼 나도 유교, 불교, 도교 등을 기독교와 합쳐서 음란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런 사상이 아니더라도, 돈이나 명예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않습니까? 정말 풀리지 않는 저의 고민입니다.  그 홀로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through) 영광(榮光, glory)과 위엄(威嚴, majesty)과 권력(權力, power[NIV]; dominion[ESV])과 권세(權勢, authority)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습니다. 많이 들어보신 낱말들입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이 낱말들의 정확한 뜻을 알고 싶었습니다. 역시 라이프성경사전의 도움을 받습니다. 영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25.2.1. 영광은 빛나는 영예를 가리킵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초월한 빛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나 긍휼, 완전성을 찬양하며 높이 드러내는 행위 등을 나타내며, 사람이나 사물과 관련해서는 ‘아름다움,’ ‘뛰어남,’ ‘명성’ 등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영광’을 나타내는 다양한 단어가 있으나 대표적으로 ‘카보드’를 들 수 있습니다. ‘카보드’의 기본 의미는 ‘무거움’으로서, 어떤 중요함이나 가치를 나타내며, 이것이 ‘영광’(존귀, 광휘)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과 관련되어서 그분의 위엄이 넘치는 현현(임재)에 대한 표현으로서, 또는 초월한 광휘(위엄, 권위, 장엄)와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지존함을 뜻하는 말로 묘사되었습...

유다서(112)

Ⅴ. 찬가(24-25) 마지막으로 유다는 찬가를 올립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유 24-25) 24.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능히(able)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9:8)  하나님께서는 능히 모든 은혜를 우리에게 넘치게 주십니다. 물론 이 본문은 연보에 관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어디 돈에 국한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일에 항상 넉넉하게 주십니다. 그 목적은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는 것이지요. 미가서를 기억하십니까?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미 6:8)에 하나님의 능하신 은혜가 넘칩니다. 그 은혜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합니다(마 6:33). 여기서 말하는 ‘먼저(first)’는 두번째(second) 또는 세번째(third)가 있는 먼저가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오히려 ‘오로지, 오직(only)’의 뜻입니다. 그렇군요. 우리가 구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리고 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다시 한 번 더 제 자신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복을 받기 위해 구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한 동기로 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 동기에 나의 이익을 생각하거나 계산하는 것이 괴로움입니다. ...

유다서(111)

23.2. 그 다음 구절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그래서 공동번역을 찾아보았습니다. 또 본능적인 욕정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욕정으로 더럽혀진 그들의 속옷까지도 미워하되, 조심스럽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사악한 자들은 너무나 부패한 존재로 그려져서 심지어 그들의 옷마저도 오염되었다는 말이겠지요. 사탄의 영향력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큽니다. 어떤 특정한 장소에 가면 영적으로 시달림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곳에 악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 느끼겠지요. 제 주위에는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기도하는데 이상한 기운이 있어서 기도가 잘 안된다는 분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데 섬뜩함을 느끼는 분도 있었습니다. 맛있게 음식을 먹었는데 몸이 이상해서 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제사상에 올라왔던 음식이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비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영적인 능력이 그것을 느끼게 하는 모양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그렇게 민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어쨌거나, 그 죄는 미워하되, 두려움으로(mixed with fear, 조심스럽게) 긍휼을 베풀라는 말입니다. 그 옷이나 그 사람에게 오염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The Sardis Synagogue ‘옷(garment[KJV, NASB], clothing[NIV])’이라는 낱말 옆에 계시록으로 가보라는 관주가 있습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

유다서(110)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유 22-23) 22.1. 유다는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도 세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권합니다. 첫째는 의심하는 자들입니다. 거짓 선생들 때문에 믿음이 약해지고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거짓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받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믿음이 약하고 흔들리니까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는 말이겠지요. 저는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제가 믿음이 없고 부족한 탓도 있습니다만, 뭔가를 조곤조곤 설명해 주고 설득시켜 주면 그나마 수긍하는 편입니다. 물론 나의 마음이 완악하고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 듣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제가 알아듣게 설명해 주고 가르쳐주면 조금이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물론 우격다짐이 통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예전에 가끔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의심이 생기면, 덮어놓고 믿어라.’ 글쎄요... 반농담이지만, 성경책을 덮어놓고 어떻게 믿겠습니까? 믿어라고 그렇게 외쳐도 믿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진대, 의심하지 말고 덮어놓고 믿으라면 얼마나 믿을까요? 믿음이 약해서 답답한 경우를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오죽 답답하면 이런 어설픈 글이라도 쓰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깨달을 때까지 또 참으시고, 또 인내하시고, 또 긍휼히 여기십니다. 바로 앞절에서 기록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Sodom and Gomorrah from the Nuremberg Chronicle by Hartmann Schedel, 1493. Lot’s wife, already transformed into a salt pillar, is in the ce...

유다서(109)

21.1. 이렇게 자신을 세우며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in God’s love)” 자신을 지키라고 합니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빌 2:13).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삶을 살아냄으로써(빌 2:12) 순종하고 신실할 책임이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3절과 20절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뿐입니다. 진리뿐입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지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 서로 맞물려 돌고 돕니다.  21.2. 여기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자비)이 있습니다. 그 긍휼이 성도를 영원한 생명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 긍휼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사실 말이 기다림이지,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버스를 한 시간 이상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까?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기상악화로 하루나 이틀 동안 공항에서 새우잠을 자본 적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오래 기다려 본적이 있습니까? 정말 하루가 천 년 같습니다.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을 아버지는 얼마나 기다렸을까요(눅 15:11-32)?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

유다서(108)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 20-21) 20.1. 유다는 몇가지 권면을 합니다. 먼저, 자신을 세우라고 합니다. “너희는 … 자신을 세우며…” 어디에서 자신을 세우라고 합니까? 자신의 믿음 위에서입니다. “너희는 너희의 …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어떤 믿음입니까? 지극히 거룩한 믿음입니다.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지극히 거룩한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유다서 3절의 “단번에 주신 믿음”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6-7)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면 됩니다. 그 안에서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습니다. 우리가 뿌리를 박는 것이 아닙니다. NIV에는 이 말씀마저도 수동태(rooted and built up)로 되어 있습니다. 나는 원래 그리스도 예수 안에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믿음을 뿌리내리게 하시고 세워주십니다. 아멘!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건히 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바울 선생님은 이것도 수동태(strengthened)로 썼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위대한 수동입니다. 아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믿음을 뿌리내리게 하시고, 세워주시고, 굳건히 해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께 감사하는 것 뿐입니다.  Praying Hands by Albrecht Dürer 20.2. 그리고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