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를 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유다서가 짧기 때문입니다. 긴 서신서나 예언서 등을 살펴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평소에 설교에서 들어보지 못했고, 목사님들이 인용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설교본문이나 인용구절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해서 목사님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감생심(焉敢生心)! 제가 그럴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해서도 되지 않습니다. 그저 궁금했을 뿐입니다. St Bernard in "A Short History of Monks and Monasteries" by Alfred Wesley Wishart (1900) 클레르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혹자는 지식을 위해 지식을 추구한다. 그것을 호기심이라고 한다. 혹자는 남에게 알려지기 위해 지식을 추구한다. 그것을 허영이라고 한다. 혹자는 섬기기 위해 지식을 추구한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아는 만큼 생각한다고 합니까? 아니면 생각하는 만큼 안다고 합니까? 제가 아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일천(日淺)합니다. 이런저런 각주와 관주, 그리고 라이프성경사전을 인용한 것을 보면 아실 겁니다. 그러니 지식을 추구합니다. 호기심, 또는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그러나 그 궁금증(호기심)이 경건을 따라가지는 못합니다. 저는 경건하지도 않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저의 경건하지 않음을 충분히 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신학을 공부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런 난잡한 글을 쓰는 것이 남에게 알려지기 위해서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단지 허영을 쫓아가는 것이 아닌지 말입니다. 소위 말하는 평신도인 제가 이런 글을 쓴다는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가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해, 아니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모
"Luther at Erfurt", which depicts Martin Luther discovering the doctrine of sola fide. Painting by Joseph Noel Paton, 1861. 4. 오직 믿음(Sola Fide): 하나님이 내리시는 구원의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하여 받을 뿐이지 다른 어떤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루터란과 개혁파 교회를 로마 카톨릭교회나 동방정교회를 구별하는 기독교 교리입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교리는 하나님이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것은 인간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 그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타락한 죄인으로 하나님의 저주아래 있기에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로 부터 구원할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죽음, 부활에 의해서만, 즉 오직 예수에 의해서만 법정적으로 의롭다함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이런 법정적 의를 ‘칭의(justification)’라고 합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b; 롬 1:17b)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 3:11)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히 10:38a) 5.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성직자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혼동되던 기존의 교회에 반하여 모든 영광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로만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고 완성하시는 일이며 거기에 인간이 참여하는 부분은 없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이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S. D. G." (for Soli Deo Gloria) at the end of a G. F. Handel manuscript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