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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121)

유다서를 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유다서가 짧기 때문입니다. 긴 서신서나 예언서 등을 살펴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평소에 설교에서 들어보지 못했고, 목사님들이 인용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설교본문이나 인용구절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해서 목사님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감생심(焉敢生心)! 제가 그럴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해서도 되지 않습니다. 그저 궁금했을 뿐입니다.  St Bernard in "A Short History of Monks and Monasteries" by Alfred Wesley Wishart (1900) 클레르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혹자는 지식을 위해 지식을 추구한다. 그것을 호기심이라고 한다. 혹자는 남에게 알려지기 위해 지식을 추구한다. 그것을 허영이라고 한다. 혹자는 섬기기 위해 지식을 추구한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아는 만큼 생각한다고 합니까? 아니면 생각하는 만큼 안다고 합니까? 제가 아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일천(日淺)합니다. 이런저런 각주와 관주, 그리고 라이프성경사전을 인용한 것을 보면 아실 겁니다. 그러니 지식을 추구합니다. 호기심, 또는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그러나 그 궁금증(호기심)이 경건을 따라가지는 못합니다. 저는 경건하지도 않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저의 경건하지 않음을 충분히 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신학을 공부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런 난잡한 글을 쓰는 것이 남에게 알려지기 위해서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단지 허영을 쫓아가는 것이 아닌지 말입니다.  소위 말하는 평신도인 제가 이런 글을 쓴다는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가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해, 아니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모
최근 글

유다서(120)

"Luther at Erfurt", which depicts Martin Luther discovering the doctrine of sola fide. Painting by Joseph Noel Paton, 1861. 4. 오직 믿음(Sola Fide): 하나님이 내리시는 구원의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하여 받을 뿐이지 다른 어떤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루터란과 개혁파 교회를 로마 카톨릭교회나 동방정교회를 구별하는 기독교 교리입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교리는 하나님이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것은 인간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 그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타락한 죄인으로 하나님의 저주아래 있기에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로 부터 구원할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죽음, 부활에 의해서만, 즉 오직 예수에 의해서만 법정적으로 의롭다함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이런 법정적 의를 ‘칭의(justification)’라고 합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b; 롬 1:17b)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 3:11)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히 10:38a) 5.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성직자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혼동되던 기존의 교회에 반하여 모든 영광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로만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고 완성하시는 일이며 거기에 인간이 참여하는 부분은 없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이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S. D. G." (for Soli Deo Gloria) at the end of a G. F. Handel manuscript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유다서(119)

3. 오직 은혜(Sola Gratia):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를 덧입혀 주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이 인간 쪽에 아무런 조건을 찾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믿음"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며, "믿음"은 구원의 은혜를 받는 '통로' 역할을 할 뿐이며 그것의 '대가'로 구원을 받지는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몇 구절을 찾아봅니다. ‘은혜(헨, hen)’는 ‘호의를 베풀다,’ ‘불쌍히 여기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이시는 자비, 은혜, 사랑을 말합니다.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창 33:8)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출 33:12). Hebrew letters spelling Chesed 또 ‘은혜(헤세드, chesed)’의 기본 의미는 ‘바라다,’ ‘사랑하다’로,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은총이나 자비, 사랑, 긍휼을 말합니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창 21:23)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삼하 2:6)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유다서(118)

2.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자연인의 상태에 대한 입장은,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참된 생명력을 잃은("죽은") 절대적인 절망의 상태로서 죄의 종 노릇을 하고 있으며 현세에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만 사후의 심판에서 죄에 대한 대가로 영원한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스스로 벗어날 능력이 없고, 구원의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서 억조창생의 죄값을 다 받고 하나님의 의를 완전히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를 덧입는 것뿐이라는 것이 Solus Christus의 내용입니다. 근거가 되는 몇 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0-12)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히 2:16-17) Appearance of Jesus Christ to Maria Magdalena (1835) by Alexander Andreyevich Ivanov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

유다서(117)

1.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성경은 유일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권위 있는 말씀이며 기독교 교리의 유일한 원천으로,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문체가 명료하며 자기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성경만이 거룩한 전승은 아니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전승도 인정하며, 교회가 권위적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기성 교회의 전통(Prima Scriptura)과는 반대됩니다. 그렇다고 Sola Scriptura가 기독교의 오랜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다만 기독교의 모든 전통은 오직 성경의 권위 아래에 있어야 하며,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전통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I saw another angel fly in the midst of heaven, having the everlasting gospel to preach..." This illustration is from the title page of Luther's Bible. 기독교 성경은 믿음과 실천의 유일하며 무오한 규칙이라고 믿는 기독교 신학 교리입니다. 이것은 종교회의나 어떤 교회의 규칙보다도 오직 성경이 최고의 권위를 갖는 하나님이 말씀이며, 모든 것들에 앞서서 주장되어야 하며, 다른 신학적 주장은 오직 성경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은 종교 개혁가들이 신학적 기둥으로 간주하는 다섯 솔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종교 개혁의 핵심원리로서 성경의 해석과 적용은 성경이외의 어떤것과도 동일한 권위를 가질수 없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성경이 없는 교황보다 성경으로 무장된 평범한 성도들이 더 강하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은 성경의 본문의 권위에 강조를 두었고,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회 전통을 성경에 함께 권위의 근거를 두었지요. (기억하십니까?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씀 말입니다.) 오직 성경이 의미하는 것은 교회의 전통에 의해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거

유다서(116)

Martin Luther initiated the Reformation with his Ninety-five Theses against the Catholic Church 간장종지만한 경건도 없는 제가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이, 그리고 정신 없이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면서 쓴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제목을 <진리전쟁>이라고 붙여보았습니다. 거짓 선생들의 거짓에 맞서서 싸울 수 있는 무기는 오직 진리밖에 없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진리’라는 낱말을 성경에서 검색해 보니 너무나 많아서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유명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전 13:6)  그리고 싸움의 무기인 하나님의 전신갑주(the full armor of God)도 생각났습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엡 6:11-18) Royal Military College of Canada memorial window Sir Lancelot wearing the whole Armour of God 여러분들이 이미 많이 들어본 구절들입니다. 너무나 많은 설교의 본문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구절에 대해

유다서(115)

마쳤습니다. 총정리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제 자신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도 자문해 보십시오. 거짓 선생들은  1) 경건하지 않습니다(유 4).  2)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꿉니다(유 4).  3)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유 4).  거짓 선생들은  1)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유 5).  2)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자들입니다(유 6).  3)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가는 자들입니다(유 7).  거짓 선생들은  1) 가인의 길에 행하였습니다(유 11).  2)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습니다(유 11).  3)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습니다(유 11). 거짓 선생들은  1) 애찬에 암초입니다(유 12).  2)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입니다(유 12). 3)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입니다(유 12). 4)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입니다(유 12).  5)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입니다(유 13). 6)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입니다(유 13). 거짓 선생들은  1)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들입니다(유 16). 2)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입니다(유 16). 3)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는 자들입니다(유 16) 거짓 선생들은  1) 분열을 일으키는 자들입니다(유 19). 2) 육에 속한 자들입니다(유 19). 3) 성령이 없는 자들입니다(유 19). 그러나 우리는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합니다(유 17). 2) 우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세웁니다(유 20). 3) 성령으로 기도합니다(유 20). 4)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지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