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유다서(98)


Ⅳ. 성도들에 대한 권면(17-2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여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유 17-19)

17.1.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말을 인용하며 권면합니다. 사도들이 미리 한 말(foretold)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미리 한 말 몇가지를 찾아볼까요?

Paul the Apostle, by Rembrandt Harmensz van Rijn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28-3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 4:1-2)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5)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후 4:3-4)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요일 2:18)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요이 7-11)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유다서(23)

3.5. 모세와 불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가 쓴 <유대고대사(The Antiquities of the Jews)>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습니다. 모세가 에디오피아인들과 싸운 경위의 일부분을 옮깁니다.  모세가 이집트의 왕궁에서 왕자로 있었을 때 에디오피아인들이 이집트를 침략해서 이집트인들의 재산을 약탈해 갔습니다. 이에 이집트인들은 모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집트의 서기관들은 모세의 용맹으로 적을 물리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모세가 전사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기뻐했으나, 히브리인들의 서기관들은 장차 모세가 그들의 장군이 되면 이집트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기뻐했습니다. 모세는 적들이 그의 공격을 알아차리기 전에 군대를 거느리고 적들을 저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수로가 아니라 육로로 행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육로로 행군하면서 그의 지혜가 매우 뛰어남을 실증해 보여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뱀이 많았기 때문에 (이곳 뱀은 다른 지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번식력이 뛰어나며 독성이 특히 강한 데다 보기에도 유달리 흉측해 보였습니다. 어떤 뱀은 눈에 띄지 않게 땅에 숨어 있다가 솟아 올라 공중을 날아 부지중에 사람을 덮쳐 해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육로로 통과하기가 어려운데, 모세는 군대가 해를 입지 않도록 무사하게 보호하는 멋진 계책을 창안해 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사초(sedge)로 방주 모양의 바구니를 만들고 그 속에 이베스(ibes)라는 새들을 담아 들고 갔습니다. 이 새는 뱀들에게는 최대의 천적인데, 이 새들이 접근하면 뱀들은 도망을 쳤습니다. 뱀들은 도망을 치다가 이베스에 의해 잡혀 먹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베스는 길들여진 동물이며 단지 뱀 종류에게만 해를 끼쳤습니다. 모세는 이런 뱀들이 서식하는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이베스를 풀어 놓아 뱀들을 물리쳤고 군대가 그 지역을 통과할 때까지 이베스를 이용했습니다. 결국 모세는 이렇게 행군을 거듭해 에디오피아인...

유다서(40)

5.7.6. 예수님의 반응을 보실까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눅 17:17-18)  분명히 예수님은 열 명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열 명 모두 제사장에게 가던 길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보다 더 우월하신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표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감사가 이렇게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열 명 중 아홉은 감사를 표하지 않습니다. 전 인구의 90 퍼센트가 감사를 표하지 않습니다. 너무 무리한 해석인가요? 아니면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중에 90 퍼센트에 대해 감사를 표하지 않습니다. 이건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최소한 저의 경우에는 말입니다. 하루의 생활 중에 이런 일 저런 일 등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 중 나는 과연 어느 정도의 비율로 감사를 표할까요? 물론 계량적으로 수치를 가늠하기가 어렵지만, 이 나병환자의 예에서처럼 10 퍼센트만이라도 하나님을 칭찬하면 될텐데 말입니다. 그 10 퍼센트가 쉽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리고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처럼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더 쉬운 말로 하면 하나님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어느 정도 아시는 것 같습니다. 전 인구의 10 퍼센트만이 감사를 표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 말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나병환자를 다 고쳐주셨습니다. 나머지 나병환자들이 이방인, 즉 사마리아인이었는지 유대인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유대인이었지 싶습니다. 그러니 “이 이방인 외에는…”이라고 말씀하셨겠지요. 비록 사마리아 땅을 거치지 않고 둘러서 가셨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라는 질문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 모두 나병이 나았습니다. 그 사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 은혜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예수님...

유다서(66)

11.3.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 거짓 선생들은 삯, 그것도 불의의 삯을 위하여 발람(Balaam)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습니다. 짝이 되는 베드로 사도의 편지의 한 부분을 봅시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벧후 2:15-16) 유다서 11절의 발람의 이야기로 갑니다. 민수기 22장에서 24장에 발람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Moab) 평지에 진을 치고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Jericho) 맞은 편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모압 왕은 십볼(Zippor)의 아들 발락(Balak)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저주해 달라고 브올(Beor)의 아들 발람에게 사신을 보냅니다. 물론 복채를 주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모압 왕과 함께 하지도 말고 이스라엘 자손을 저주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신들이 이 소식을 모압 왕에게 전하자, 그는 첫 번째 사신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모압 왕에게 가되 하나님이 이르시는 말씀만 준행하라고 반쯤 허락하십니다.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 나귀를 타고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든 것을 보고 더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자 발람이 나귀에게 채찍질합니다. 이 때 여호와께서 나귀의 입을 열어서 사람의 말을 하게 하십니다. 왜 때리느냐고 추궁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혀서 여호와의 사자를 보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발람에게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도록 허락하십니다. 발람이 도착하자 발락은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Balaam and the Ass. by Rembr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