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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87)


15.1. 상상하기 힘든 무리와 함께 오시는 주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뭇 사람을 심판하시려고(유 15) 오십니다. 무엇 때문에 심판하십니까? 첫째는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all the ungodly)가 경건하지 않게(in the ungodly way)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all the ungodly acts)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함(to convict)입니다. 

항상 그러듯이 ‘경건’이라는 낱말의 뜻부터 라이프성경사전에서 다시 확인합니다. ‘경건(敬虔, godliness)’은 공경(恭敬, honor)하는 자세로 삼가고 조심함을 뜻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믿음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다,’ ‘하나님께 경배(예배)하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곧 경건한 삶이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며,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과 충성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합니다(시 86:2). 따라서 경건한 생활의 비결은 ① 하나님의 말씀으로(딤후 3:14-17), ② 기도로(딤전 2:1-2), ③ 망령되고 허탄한 교훈을 버림으로(딤후 2:16), ④ 경건의 훈련을 쌓음으로(딤전 4:7), ⑤ 경건한 부모의 신앙 교육을 통해(삼상 1:11), 그리고 ⑥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함으로(딛 2:11-14) 가능합니다. 이렇게 경건 생활에 매진하는 자들은 환난과 시험 중에도 구원을 얻으며(벧후 2:5; 3:7), 이 생(this life)에서도 번영하고(딤전 4:8), 내세에서는 하늘 상급을 얻게 됩니다(계 14:13). 반면, 경건치 못한 자는 하나님께 정죄받고(유 1:15), 결국 영원한 심판과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벧후 3:7).

얼마나 경건하지 않았으면 15절 상반절에 ‘경건하지 않은(ungodly)’이라는 낱말이 세 번씩이나 연거푸 사용되었을까요? 우리가 이미 여러 번 읽은 베드로후서의 한 구절을 다시 인용합니다.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 (벧후 2:5-6)

그리고 둘째는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ungodly sinners)이 주를 거슬러 한(have spoken against him[the Lord]) 모든 완악한 말(all the harsh words)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함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말했기에 완악한 말이라고 할까요? 관주를 보니 사무엘상과 시편으로 가라고 합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삼상 2:3)

그들[악인]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시 94:4)

Building the Tower of Babel was, for Dante, an example of pride. Painting by Pieter Brueghel the Elder

완악한 말은 교만과 오만의 말입니다. 더 쉬운 용어로 하면 건방진(arrogant) 말입니다. 특히 사무엘상에서 “여호와를 지식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는 말씀이겠지요. 그래서 공동번역은 “야훼는 사람이 하는 일을 다 아시는 하느님”이라고 번역합니다. 새번역은 “참으로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라고 번역합니다. NIV는 “the LORD is a God who knows”라고 번역했고, NASB와 ESV는 “the LORD is a God of knowledge”라고 번역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읽고 있는 개정개역이나 NASB보다는 공동번역과 새번역, 그리고 NIV가 더 와닿습니다. 

그런데 위의 구절들을 잘 보십시오. 앞부분은 교만하고 오만한 말을 언급합니다. 그런데 뒷부분은 행동(deeds)과 죄악을 행하는자들(evildoers)을 언급합니다. 어떻습니까? 말과 행동이 따로따로 이루어질까요? 교만한 말을 하면 교만한 행동을 하게 마련입니다. 오만한 말을 하면 오만한 행동을 하게 마련입니다. 건방진 말을 하면 건방진 행동을 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말의 결과인 행동을 달아보신다고 합니다. 그 행동이 저울질당합니다(deeds are weighed). 

나의 입에서 교만한 말, 오만한 말, 건방진 말이 나오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소위 교회에 다닌다는 성도들이 일부러 건방진 말을 하고 건방진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마음 깊숙한 곳에서 건방진 말이 튀어나오고 건방진 행동이 드러나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그 말과 행동이 건방지다는 것조차 모를 때가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무심코 한 말이 상대방의 가슴에 대못을 박거나, 내가 무심코 한 행동이 상대방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경우는 없는지요? 하나님이여, 용서하소서. 나의 입술을 다스리소서. 믿음의 도(유 3)를 지키게 도우소서. 거짓 선생들처럼 허탄한 말을 하지 않도록 나의 마음을 다스리소서.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 141:3)

유다는 다음 절에서 거짓 선생들의 정체를 확실하게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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