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2. ‘바람’이라는 낱말 옆에 에베소서로 가보라는 관주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4)
그렇군요. 이런 거짓 선생의 속임수와 유혹에 빠지지 않고 어처구니 없는 교훈의 바람(풍조)에 밀리지 않으려면, 어린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그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연구하고 마음판에 새기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믿음의 도(유 3)를 지키고 그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성경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해서 변화를 받으라고 합니다. 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의지와 생각대로 되지 않음을 아주 많이 경험하셨을 겁니다. 지금도 좌절하고 있는 분도 있을 겁니다. ‘변화해야지!’라고 결단하더라도 쉽지 않습니다. 저도 하루에 수백번 ‘변해야지!’라고 결단하지만 작심삼일, 아니 작심삼분입니다.
바울 사도는 변화를 받으라(be transformed, 롬 12:2)고 합니다.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시는 변화를 받으라고 합니다. 내가 변하지는 않지만(변화할 수도 없습니다), 변화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마음을 새롭게 하면(by the renewing of your mind) 반은 성공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겠다는 결단은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만, 그래도 그것은 할 수 있으니 성경에 그렇게 기록한 것일 겁니다. 그러면 변화를 받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을 겁니다. 변화를 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역시 주도권은 하나님께서 쥐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이 글에서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많이 보셨겠지만, 또 다시 다른 방향으로 갑니다. 변화(transform)라는 낱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믿는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지요. trans는 기본적으로 ‘가로질러서(across),’ ‘넘어서는(beyond),’ 또는 ‘지나서(through)’라는 뜻의 낱말입니다. 물론 across나 beyond나 through에는 그 외에도 여러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기본적인 뜻만 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form은 ‘방식(way something is/looks),’ 또는 ‘모습(shape)’의 뜻의 낱말입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 ‘방식이나 모습을 넘어선다’라는 뜻의 변화(transform)라는 낱말이 탄생합니다.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고 생각하고 행동한 방식을 넘어서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까지의 내 얼굴이 새로운 얼굴로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습·성격 등을 더 좋게 완전히 바꿔 놓는 것을 말합니다. 탈바꿈시킨다는 말입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탈바꿈하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로마서에서 변화를 받으라(be transformed, 12:2)고 합니다. 이 글에서 가끔 드리는 말이 있습니다. 위대한 수동! 너무나 유명한 구절을 하나 인용하고 다음 은유로 넘어갑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너무나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저는 하반절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반절이 더 크게 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제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얼마나 제대로 읽고 있지 않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듣기 좋은 것,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작 들어야 할 것은 듣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러지 않겠지요? 여기서도 평소의 저의 실수가 나타났습니다. 새 것이 되었다는 하반절만 좋아했지요. (하기야 세 것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상반절의 말씀은 거의 눈여겨 보지 않았습니다. 피조물… 그것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피조물… 그렇군요. 비록 새 것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피조물이지, 창조주가 아닙니다. 그런데 마치 창조주인 양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 고마울 뿐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되었다고 해서 내가 주권(주도권)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전히 피조물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꼼꼼히 읽고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듣고 싶은 것에만 귀가 열려있기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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