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유다서(77)


12.4.1. 물(water)이라는 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살아가는데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행성이나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도 그 별에 물의 존재를 먼저 파악하려고 합니다. 화성에 물의 흔적이 있네 없네 하면서요. 그건 천문학자들에게 맡기고 저는 성경이 말하는 물을 한 번 알아보려고 합니다. 라이프성경사전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군요. 

강수량이 절대 부족한 팔레스타인에서 물은 특별히 소중하게 취급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을 얻기 쉬운 곳에 성음을 건설하고 모여 살았으며, 전쟁에 대비하여 성밖의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이는 지하 터널을 파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대하 32:2-4). 또 가축을 먹일 공동 우물을 마련하되 가축에게 물을 먹이는 시간을 정하고, 증발이나 맹수 혹은 대적들의 해코지를 막기 위해 무거운 돌로 뚜껑을 만들어 두는 등 공동 우물을 사용하는 수칙도 있었습니다(창 26:20; 출 2:16-17). 뿐만 아니라 장거리 여행을 위해 가죽부대에 물을 준비해야 했습니다(창 21:14).

한편, 물은 식물의 성장에 결정적 도움을 주고,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생명을 유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더러운 것을 깨끗케 하는 특성 때문에 죄를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상징합니다(겔 16:4; 요 3:5; 엡 5:26; 히 10:22; 요일 5:6, 8). 반면 물의 유동적 특성 때문에 불완전하고 연약함을 상징하기도 한다(창 49:4; 겔 21:7).

이외에도 성령(요 7:37-39), 영혼의 만족(사 58:11), 영적인 번영(시 1:3), 평강(시 23:2), 구원과 생명(사 12:3; 55:1; 계 21:6; 22:17), 이스라엘의 회복(사 43:20; 욜 3:18), 온 세상의 복음화(사 11:9; 합 2:14), 공의의 실현(암 5:24), 하나님의 보호(사 27:3)와 능력(시 74:13-15)과 위엄(삼하 22:12, 16; 시 93:3-4), 진노(호 5:10)와 심판(렘 8:14; 23:15) 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련이나 고난(삼하 22:17; 시 22:14; 66:12; 사 30:20; 43:2), 대적과 그들의 핍박(시 124:4-5; 144:7; 사 17:12-13), 군대의 침략(단 11:10, 40), 대량 학살(시 79:3), 사탄의 공격(계 12:15), 쇠약함(겔 7:17; 21:7), 낙담(수 7:5), 쇠멸(시 58:7)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하는군요. 

살펴본 것처럼 팔레스타인은 1년 중 강수량이 절대 부족하며, 더욱이 우기(雨期, 11-3월)와 건기(乾期, 5-9월)가 매우 뚜렷한 지역입니다. 따라서 자연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그곳 주민들에게는 ‘비’의 중요성을 다른 어느 지역에서보다 더 절실히 느끼고 있었으며, 또 때를 따라 적절히 내리는 단비를 하나님이 내리시는 큰 복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신 28:12; 렘 5:24; 호 6:3). 반면에 비가 그치는 것은 범죄한 자를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간주하였습니다(신 11:17; 왕상 8:35-36; 렘 3:3).

계절에 따라 10월경에 내리는 가을비 곧 ‘이른비’(시 84:6; 욜 2:23)와 우기 중에도 소나기를 동반한 1, 2월경의 겨울비(욥 37:6; 아 2:11), 그리고 4월경의 봄비, 곧 ‘늦은비’(욥 29:23; 잠 16:15)가 있습니다. 이런 비둘은 하나님의 적절하고도 풍족한 은혜와 선하심을 상징합니다(신 11:14; 시 84:6; 렘 5:24; 욜 2:23). 

The Children of Israel Crossing the Red (Reed) Sea, Exodus 13:21–22 By day the Lord went ahead of them in a pillar of cloud to guide them on their way and by night in a pillar of fire.

그리고 성경에서는 구름을 종종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상징합니다(민 10:34; 시 97:2).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출 19:9),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봉헌할 때(출 40:34),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 동안 줄곧(민 12:5),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왕상 8:10-11) 구름 가운데 임재하시고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은유적으로 구름이 덮이는 것은 대적의 침략과 정복(겔 30:18; 애 2:1), 구름이 사라짐은 죄의 용서(사 44:22), 빨리 사라지는 구름은 인생무상과 허무함(욥 30:15; 호 6:4), 셀 수 없이 많은 구름은 인간 지식의 유한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욥 26:8-9; 38:37), 구름의 날은 심판날(겔 30:3), 높은 구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사 14:14), 그리고 비 없는 구름은 허탄함(잠 25:14)을 상징합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유다서(10)

Miraculous catch of fish 1.5.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불러준다는 것은 너무나도 기분 좋은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누군가가 따뜻한 음성으로 나의 이름을 부릅니다. 내가 고민하고 번민할 때, 어찌 할 바를 몰라 두 손 놓고 멍하니 있을 때, 무서워 발걸음을 뗄 수가 없을 때, 두려워서 무릎이 덜덜 떨릴 때, 간담이 다 녹아내릴 때, 번뇌로 내 가슴이 검은 숯덩이가 되어 정신이 아득할 때, 그 숯덩이가 다 타서 허연 재만 남았을 때,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졌다고 생각될 때, 나같은 사람이 살아서 뭘 하겠느냐고 자포자기할 때, 그 어디를 바라보아도 구원의 손길은 다가오지 않을 때, 어디에 소망을 두어야 할 지 전혀 모를 때, 완전한 흑암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내 자신이 나의 존재를 부정할 때, 누군가가 나즈막한 소리로 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창조주, 가장 완벽하시고 온전하시고 완전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그 분의 존재 안에서 격려하시고, 등을 토닥거려 주시고, 얼싸안아 주신다는 것은 더할 나위없이 황홀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실패하고, 아니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지만, 더 나아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결국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눅 15:11-32)처럼 실제로 떠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르십니다. 나는 나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존재를 인정하십니다. 매일 매순간 나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르십니다. 왜 간섭하느냐고 원망 아닌 원망을 할 때도, 죄의 무게에 짓눌려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울먹거리며 말할 때도, 하나님은 나를 부르십니다. 나를 인정해 주십니다.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그분께서 “괜찮다.”고 하시면서 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십니다. 좁은 생각이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부르심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

유다서(51)

8.2. … 육체를 더럽히며, ...  육체를 더럽힙니다(defile the flesh[KJV], pollute their own bodies[NIV]). 앞에서 보았지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관계를 맺어 육체를 더럽혔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거주민들이 다른 신을 따라가며 섬기고 절하면서 육체를 더럽혔습니다. 이단들의 뉴스를 들으면 가끔 그런 뉴스까지 들립니다. 연약한 여인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것 말입니다.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가장 약한 자들 중의 하나인 여인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 말입니다. 이단 뿐만 아니라 쥐꼬리만한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도 그런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합니다. 요즘 말로 갑질한다고 하죠. 약자들을 그냥 두어도 모자랄 판에 갑질합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9-10)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쓴 편지입니다. 앞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좋겠지만, 최소한 이 구절에 의하면, 음행(sexual immorality), 우상 숭배(idolatry), 간음(adultery), 탐색(male prostitution), 남색(homesexual offend), 도적(thievery), 탐욕(greed), 술취함(drunkenness), 모욕(slander), 속여 빼앗음(사기, swindle) 등은 사악한 것들(불의, wickedness)입니다. 모두 육체를 더럽히는 데 앞장서는 것들입니다. 이런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거짓 선생들의 이러한 미혹을 받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위에서 빌 마이어스(...

유다서(9)

1.4.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유다서 1절 하반절에서 유다는 자신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을 밝힙니다. 부르심을 받은자? 누구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일까요? 그리고 그 부른 이는 무엇때문에 불렀을까요?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겁니다. 그리고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뭔가 할 이야기가 있고 시키실 일이 있어서 부르셨을 겁니다. 그리고 부르심을 받은 자는 사랑을 얻은 자입니다. 내가 사랑을 주는 주체가 아닙니다. 나는 사랑을 얻는 입장(beloved)입니다. 어디에서 사랑을 얻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in God the Father)입니다. 저는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하면 저에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구절이 바로 그 유명한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도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이 로마서 8장 28절의 구절이 너무나 아름답게 들리지만, 좁은 저의 생각으로는 동시에 너무나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말인데, 과연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네 마음(heart)을 다하고 목숨(soul)을 다하고 뜻(mind)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너는 마음(heart)을 다하고 뜻(soul)을 다하고 힘(strength)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5)  다시 말해 너의 모든 것으로, 너의 모든 됨됨이로, 너의 모든 존재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겠지요. 모든 존재는 커녕 일부분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