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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65)


11.2.4.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십니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7) 

아직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기 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경고하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crouching) 있습니다. 그렇게 죄가 문을 여는 것을 기회로 들어올 터이니, 죄를 다스리라(rule over)고 말입니다. 정말 고백할 것이 많군요…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들입니까? 다른 이들의 권면을 받아들입니까? 이런저런 사건이 터지는 것을 경고로 받아들입니까? 

죄(sin)는 ‘과녁을 맞히지 못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교회에 조금이라도 다니신 분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금메달 밭인 양궁을 생각해봅시다. 화살을 쏘는 곳과 과녁 사이의 거리 말입니다. 일정한 거리를 기준으로 해서 점수를 계산합니다. 활 시위를 당기는 곳과 과녁 사이의 거리가 멀다면, 과녁을 맞출 확률이 줄어들겠지요. 세계 최고의 양궁 선수가 100미터 거리에서 한 가운데, 즉 100점을 맞춘다고 합시다. 일반인이면 한 가운데는 커녕 과녁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100미터가 아니라 50미터이면 어떨까요? 과녁을 맞출 확률이 높아지겠지요.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25미터면? 10미터면? 바로 코 앞이면 어떨까요? 바로 코 앞이면 시위를 당길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화살을 집어 과녁에 콕 찍으면 됩니다. 이렇게 과녁이 가까이 있으면 아무리 활을 못쏘는 사람이라도 맞출 겁니다.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이 아니더라도, 로빈 훗이 아니더라도, 바로 코 앞에 있는 과녁을 놓칠 리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과녁을 맞춥니다. 나는 과녁을 맞출 실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활과 화살을 들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너무 멀어서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시위를 당겨보지만 힘에 부치기도 합니다. 과녁도 가물가물 보이지 않습니다. 그걸 아시는 하나님은 과녁을 가까이 두시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니, 친히 과녁이 되어 내 코 앞에 바싹 다가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앞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믿으면 과녁을 맞추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다음 관련 구절을 보겠습니다.   

Cain and Abel, 15th-century German depiction from Speculum Humanae Salvationis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히 11:4)

아벨은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내가 다가가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과녁을 가까이 두셨는데, 그것마저도 하나님께서 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우리를 의로운 자라고 부르십니다. 이런저런 잘못을 저지르고, 선을 행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께서 가까이 옮기신 과녁을 믿으면 의로운 자라고 불러주십니다. 그리고 그 예물에 대해 증언하십니다. 그래서 아벨은 친형인 가인에게 살해당했으나, 지금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과녁을 가까이 하라고 말입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요일 3:12)

그런데 인간이 원래 악한 존재라, 아우를 죽입니다. 이웃을 죽입니다. 악한 행위로 죽입니다. 악한 말로 죽입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말합니다. “들로 나가자.” 우리말 성경은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라고 기록합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구체적이지 않지만, NIV는 “들로 나가자(Let’s go out to the field; 창 4:8).”라고 말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창 4:8)”라고만 기록합니다. 하기야 형이 나가자고 했으니까 동생 아벨은 따라 나섰겠지요. 이렇게 가인은, 악한 자는, 거짓 선생은 성도를 꾀어냅니다. 사탄은 속이는 자입니다 나는 성도를 꾀고 있습니까? 선한 뜻으로 권면합니까? 어설픈 논리를 앞세워 형제를 수렁에 빠지게 하지는 않습니까?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나의 말 한 마디에 생채기가 나기도 하고 소망을 갖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으로, 믿음으로 말하고 권면합시다. 판결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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