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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62)


11.2.1.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

거짓 선생들은 가인(Cain)의 길에 행하였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창 4:3-8)

Cain slaying Abel by Peter Paul Rubens

가인의 길(way of Cain)은 이기적이고 탐욕의 길입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요일 3:12)

유다서를 읽으며 고백할 것이 많습니다. 저는 가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나름대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랑한다고 고백도 하고, 연보도 하고, 이런저런 봉사도 했습니다. 물론 부족한 것을 인정합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과 그의 제물을 받으시면, 시기심이 일어납니다. 축하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질투가 일어납니다.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데도 부러운 마음이 듭니다. 나도 하나님께 응답받기를 바라며 더 하나님을 찾아야 할 텐데, 슬그머니 부아가 납니다. 안색이 변합니다. 하나님의 질문을 볼까요?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창 4:7) 

가인과 아벨(Abel), 그리고 하나님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가인이 선(what is right)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것(what is right)이 아니었다는 것이겠지요. 사람이 보기에 선하고 올바른 것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하고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것일 겁니다. 나는 한다고 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사람이 보기에 좋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하지 않으면 선하지 않은 것입니다. 판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것, 올바른 것이 무엇일까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6-8)

그렇습니다. 번제물도 좋고, 천천의 숫양도 좋고,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도 좋고, 내 맏아들도 좋고, 내 몸의 열매도 좋지만, 하나님께서 선하다고 인정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to act justly), 인자를 사랑하며(to love mercy),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to walk humbly with your God)입니다. 가인은 정의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가인은 인자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가인은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나의 모습이 아닐까요? 자아비판이나 자아학대가 아닙니다. 정의를 행한다고 하면서 불의를 계획하거나 행합니다. 인자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타인의 고통을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합니다. 그러니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나는 번제도 드린다고 하지만, 천천의 숫양을 드린다고 하지만,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드린다고 하지만, 내 맏아들을 드린다고 하지만, 내 몸의 열매를 드린다고 하지만, 정의롭게 행동하지 않고 인자를 소홀히 여기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은 올바른 것, 선한 것(what is right)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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