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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56)


9.4. 천사장 미가엘이 ...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천사장 미가엘도 직접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않습니다. 다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할 뿐입니다. 그러면 주께서 꾸짖으시는 장면을 한 번 볼까요?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 2:12-17)

Reconstructed view of the Pergamon Acropolis, Friedrich Thierch, 1882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의 하나인 버가모(Pergamum)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버가모에 대해 라이프성경사전의 도움을 받습니다. 버가모는 ‘요새화된,’ ‘견고한 요새’란 뜻입니다. 소아시아 서쪽 무시아(Mysia) 주(州)의 주요 도시입니다. 에게 해에서 내륙으로 약 24㎞ 지점에 위치한 300m 언덕 위에 세워진 성읍이었으며, 오늘날 터키의 ‘베르가마’(Bergama)에 해당합니다. 버가모는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 후계자들의 시대에 융성기를 맞았는데, 특히 B.C. 3세기경 앗탈루스 1세(Attalus Ⅰ, B.C. 241-197년경)가 앗탈루스 왕조의 수도로 삼았고, 또 자신의 영토를 로마에 헌납한 후 그곳은 아시아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의 아들 에우메네스 2세(Eumenes Ⅱ, B.C. 197-159년경)에 의해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그가 세운 도서관은 당시 최고를 자랑하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다음으로 크고 유명했다고 합니다. 소장된 장서만 해도 무려 20만권이나 되는 대형 박물관이었다고 하지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양피지’(羊皮紙)를 의미하는 ‘parchment’는 ‘버가모’를 가리키는 라틴어 ‘페르가메나’(Perga-mena)의 원형인 헬라어 ‘페르가메네’(‘버가모에서 만든 것’이란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후 로마 제국 시대의 버가모는 우상과 황제숭배가 성행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B.C. 29년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숭배하는 처소가 마련된 이래, 트라야누스, 칼리굴라 등의 황제 신전이 차례로 세워짐으로써 로마 황제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높이 12m나 되는 장대한 제우스의 제단도 세워졌고, 아데미, 디오니소스, 아스켈레피오스 등의 신전이 건축되었습니다. 또한 데메테르(Demeter) 신전에서 B.C. 2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To an unknown god)라는 비문이 기록된 제단이 발굴되었는데,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버가모의 우상 숭배 정도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탄의 권좌(Satan’s throne[seat]; 계 2:13)’란 바로 이런 우상 숭배 또는 황제 숭배를 위한 제단들을 염두에 둔 표현일 것입니다. 

한편, 초대교회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 하나였던 버가모 교회 안에서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과 니골라 당(Nicolaitans)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 등, 여러 이단들이 성행하여 교회를 혼란케 하였는데(계 2:14-15), 버가모의 성도들은 이런 와중에도 안디바(Antipas)와 같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것으로 유명합니다(계 2:12-17).

니골라 당은 에베소(Ephesus) 교회와 버가모 교회에 침투한 이단의 일파로써, 이들은 한번 하나님을 믿은 뒤에는 무슨 행동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며 도덕폐기론과 무율법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즉, 율법의 때는 지나갔으므로 지킬 필요가 없고, 육신은 악(惡)이요 영(靈)만이 선하므로 육신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특히 신자는 은혜로 보호받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해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가르쳤던 자들입니다(계 2:14-15, 20). 한편, 이처럼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극단적 자유주의(무율법주의) 경향을 지닌 니골라 당의 기원에 대해서는 특정한 인물(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니골라 등)에 의해 창설되었다는 견해가 있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혹자는 니골라 당을, 일상 생활에서 기독교 신앙과 이교 세계의 세속적인 문화를 적절히 혼용한 혼합주의적이고 편의주의적인 신앙 성향을 지닌 무리들에 대한 상징적 명칭으로 보기도 한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안디바는 초대교회 당시 소아시아 지방 버가모 교회의 순교자로서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이라는 명예로운 별칭을 지니고 있습니다(계 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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