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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103)


18.5.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 전에 비가 내렸을까요?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창 2:4-5).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지요(창 2:6). 그리고 홍수 심판의 창세기 6장까지 ‘비’라는 낱말은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노아를 비롯한 그 당시 사람들은 비라는 것을 몰랐을 겁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게는 중요하다기보다는 궁금증이 더 큽니다. 만약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다음과 같은 대화가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The Deluge, by John Martin, 1834. Oil on canvas. Yale University

“이보게, 노아, 도대체 뭘 하는거야? 하루이틀도 아니고, 벌써 몇 년째 뭘 만드는거야?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 자네가 뭘 만드는지 아직도 모르겠군. ”
“어이, 왔는가? 여호와께서 이 땅의 패역함을 보시고 심판하시겠다는군. 비를 내려서 홍수로 이 땅을 쓸어버리겠다고 하셨어.”
“뭐? 패역? 심판? 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래 좋아. 우리가 좀 나쁘게 행동한 것은 인정하네. 아니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나? 그리고 자네 식솔들에겐 해를 끼치지 않았어. 그런데 무슨 심판? 그리고 뭐? 비? 그게 뭐야? 처음 듣는 말이군. 자네는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나?”
“나도 잘 몰라. 여호와께서 홍수를 땅에 일으켜 땅에 있는 것들을 다 죽이겠다고 하셨을 뿐이야. 이 땅위의 저 하늘을 보게. 궁창의 물이 보이지? 그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 비가 아닐까 짐작하기만 할 뿐, 나도 자세한 것은 모르네. 그리고 나는 그분의 명령대로 이렇게 배를 만들고 있을 뿐이야. 이보게, 자네도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포악한 행동을 그만 하게.”
“에이, 이 사람아. 저 위의 물이 쏟아진다고? 그렇다 하더라도 얼마나 되겠어? 저기 높은 산으로 피하면 되겠지. 자네 어지간히도 할 일이 없는 모양이군. 이보게, 오늘 밤에 윗동네를 우리가 쓸어버리려고 계획을 세웠다네. 며칠 전에 그 놈들이 우리 마을을 약탈하지 않았나? 복수하고 본때를 보여줘야지. 자네도 같이 가세. 우리가 뭐 남인가?”
“이보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니깐.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그분의 말씀을 듣고 나쁜 행실을 그치게. 혹시 아는가? 그분이 자네와 자네 식솔들을 이 방주에 태워주실지도 모르지. 이 배에는 자리가 넉넉하다네.”
“예끼, 이 사람아. 비가 온다는 약속이 도대체 뭔가? 그리고 자네가 말하는 그 비를 기다리던 우리 조상들도 다 죽었고, 자네가 말하는 여호와가 창조한 이래로 모든 것이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 않은가? 나는 자네의 여호와가 창조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지만 말이네. 아무리 봐도 자네는 제 정신이 아니야.”
“그러지 말고 내 말을 들어.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니깐.”
“이보게, 노아, 정신차리게. 자네는 그나마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이렇게 정신이 나가다니, 쯔쯔쯧. 이걸 어떻게 하나? 하루이틀도 아니고 말이야.”

상상력이 부족해서 대본을 쓰기가 어렵군요. 그래도 염치불구하고 하나 더 씁니다.

The art Bible (1896)

“이보게, 노아, 도대체 뭘 하는거야? 하루이틀도 아니고, 벌써 몇 년째 뭘 만드는거야?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 자네가 뭘 만드는지 아직도 모르겠군. ”
“어이, 왔는가? 여호와께서 이 땅의 패역함을 보시고 심판하시겠다는군. 불을 내려서 이 땅을 다 태우겠다고 하셨어.”
“뭐? 패역? 심판? 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래 좋아. 우리가 좀 나쁘게 행동한 것은 인정하네. 아니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나? 그리고 자네 식솔들에겐 해를 끼치지 않았어. 그런데 무슨 심판? 그리고 뭐? 불? 자네, 제 정신이 아니군. 불을 내린다고? 아니, 이 사람아, 불이라는 건 타오르는 거야. 내려오는 불도 있나?” 
“나도 잘 몰라. 하나님께서 불을 땅에 내려서 땅에 있는 것들을 다 죽이겠다고 하셨을 뿐이야. 소돔과 고모라처럼 말이지. 나도 짐작하기만 할 뿐, 나도 자세한 것은 모르네. 그리고 나는 그분의 명령대로 이렇게 이걸 만들고 있다네. 나도 어떤 물건이 될지 몰라. 그날 그날 만들 것을 지시하시니 말이야. 그건 그렇고, 이보게, 자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포악한 행동을 그만 하게.”
“에이, 이 사람아. 불이 내려온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소돔과 고모라? 다 전설에 불과해. 신화란 말일세. 사실이 아니야. 그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얼마나 되겠어? 강물, 호수물, 바닷물로 끄면 되지. 자네 어지간히도 할 일이 없는 모양이군. 이보게, 오늘 밤에 아랫동네를 우리가 쓸어버리려고 계획을 세웠다네. 며칠 전에 그 놈들이 우리 마을을 약탈하지 않았나? 복수하고 본때를 보여줘야지. 자네도 같이 가세. 우리가 뭐 남인가?”
“이보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니깐.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그분의 말씀을 듣고 나쁜 행실을 그치게. 혹시 아는가? 그분이 자네와 자네 식솔들을 이 피난처에 보호해 주실지도 모르지. 모르긴 몰라도 이것은 규모가 큰 것 같아.”
“예끼, 이 사람아. 불이 내린다는 약속이 도대체 뭔가? 그리고 자네가 말하는 그 불을 다리던 우리 조상들도 다 죽었고, 자네가 말하는 하나님이 창조한 이래로 모든 것이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 않은가? 나는 자네의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지만 말이네. 아무리 봐도 자네는 제 정신이 아니야.”
“그러지 말고 내 말을 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니깐.”
“이보게, 노아, 정신차리게. 자네는 그나마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이렇게 정신이 나가다니, 쯔쯔쯧. 이걸 어떻게 하나? 하루이틀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사실 하늘과 땅은 지금도 하나님의 같은 말씀에 의해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멸망당할 심판의 날까지만 보존되었다가 불에 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벧후 3:7, 공동번역) 

조롱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조롱하는 자의 눈이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힙니다(잠 30:17). 주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러 잊으려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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