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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10)


Miraculous catch of fish

1.5.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불러준다는 것은 너무나도 기분 좋은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누군가가 따뜻한 음성으로 나의 이름을 부릅니다. 내가 고민하고 번민할 때, 어찌 할 바를 몰라 두 손 놓고 멍하니 있을 때, 무서워 발걸음을 뗄 수가 없을 때, 두려워서 무릎이 덜덜 떨릴 때, 간담이 다 녹아내릴 때, 번뇌로 내 가슴이 검은 숯덩이가 되어 정신이 아득할 때, 그 숯덩이가 다 타서 허연 재만 남았을 때,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졌다고 생각될 때, 나같은 사람이 살아서 뭘 하겠느냐고 자포자기할 때, 그 어디를 바라보아도 구원의 손길은 다가오지 않을 때, 어디에 소망을 두어야 할 지 전혀 모를 때, 완전한 흑암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내 자신이 나의 존재를 부정할 때, 누군가가 나즈막한 소리로 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창조주, 가장 완벽하시고 온전하시고 완전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그 분의 존재 안에서 격려하시고, 등을 토닥거려 주시고, 얼싸안아 주신다는 것은 더할 나위없이 황홀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실패하고, 아니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지만, 더 나아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결국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눅 15:11-32)처럼 실제로 떠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르십니다. 나는 나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존재를 인정하십니다. 매일 매순간 나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르십니다. 왜 간섭하느냐고 원망 아닌 원망을 할 때도, 죄의 무게에 짓눌려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울먹거리며 말할 때도, 하나님은 나를 부르십니다. 나를 인정해 주십니다.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그분께서 “괜찮다.”고 하시면서 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십니다. 좁은 생각이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부르심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그 사랑이 아니면 부르실 리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얻은 자입니다. 나는 그 사랑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주셨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 사랑을 거부하는 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주십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저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저는 하늘 아버지로부터 일방적인 사랑을 얻은 자입니다. 나를 불러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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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 전에 비가 내렸을까요?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창 2:4-5).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지요(창 2:6). 그리고 홍수 심판의 창세기 6장까지 ‘비’라는 낱말은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노아를 비롯한 그 당시 사람들은 비라는 것을 몰랐을 겁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게는 중요하다기보다는 궁금증이 더 큽니다. 만약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다음과 같은 대화가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The Deluge, by John Martin, 1834. Oil on canvas. Yale University “이보게, 노아, 도대체 뭘 하는거야? 하루이틀도 아니고, 벌써 몇 년째 뭘 만드는거야?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 자네가 뭘 만드는지 아직도 모르겠군. ” “어이, 왔는가? 여호와께서 이 땅의 패역함을 보시고 심판하시겠다는군. 비를 내려서 홍수로 이 땅을 쓸어버리겠다고 하셨어.” “뭐? 패역? 심판? 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래 좋아. 우리가 좀 나쁘게 행동한 것은 인정하네. 아니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나? 그리고 자네 식솔들에겐 해를 끼치지 않았어. 그런데 무슨 심판? 그리고 뭐? 비? 그게 뭐야? 처음 듣는 말이군. 자네는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나?” “나도 잘 몰라. 여호와께서 홍수를 땅에 일으켜 땅에 있는 것들을 다 죽이겠다고 하셨을 뿐이야. 이 땅위의 저 하늘을 보게. 궁창의 물이 보이지? 그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 비가 아닐까 짐작하기만 할 뿐, 나도 자세한 것은 모르네. 그리고 나는 그분의 명령대로 이렇게 배를 만들고 있을 뿐이야. 이보게, 자네도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포악한 행동을 그만 하게.” “에이, 이 사람아. 저 위의 물이 쏟아진다고? 그렇다 하더라도 얼마나 되겠어? 저기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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