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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28)


Ⅲ.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고(5-16)
변절자의 심판에 대한 역사적인 예들(5-7)
믿지 않는 이스라엘(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 (유 5)

"Crossing of the Red Sea", Nicholas Poussin

5.1.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유다는 수신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다시 생각할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5절 하반절에 있습니다.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 

이스라엘의 역사, 즉 히브리인들의 역사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하고 큰 사건은 출애굽 사건입니다. 출애굽하면서부터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확립됩니다. 히브리인들은 출애굽한 그 시점을 새해의 첫 달로 삼아 기립니다. 그만큼 출애굽은 그들의 역사에서 글자그대로 전환점이 되는 사건입니다. 너무나 자주 들어서 출애굽의 의미가 반감되는 경우도 저에게는 있었습니다. “아, 또 그 이야기야? 이제 그만 하라고. 다 아는 얘긴데, 뭘 또 새삼스럽게 해?” 이런 식으로 출애굽을 격하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출애굽을 이야기합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로,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그리고 손자로 대대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얼마나 중요하고 큰 사건이면 3,500년 동안 그 구원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올까요? 유다는 그 이야기를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유다뿐만 아니라 웬만한 선지자들과 어른들은 출애굽을 자자손손 대를 이어 전해줍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망각하는 존재라, 자꾸만 이야기하고 전해줍니다. 전해줄 뿐만 아니라, 기념일을 정하고 매년마다 절기로 지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두고두고 이야기합니다. 구원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영원히 이어져야 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한 해에 52번 이상의 설교를 듣습니다. 설교의 주제가 다양하겠지만, 결론(?)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와, 하나님의 사랑(the love of God)과, 그리고 성령의 교통하심(the fellowship of the Holy Spirit)이 아니겠습니까(고후 13:13)? 따로 떨어진 것 같은 이 세가지가 실제로는 하나로 합쳐져 우리의 귀에 들립니다. 물론 아주 고차원적인 덕에 대한 설교, 연보에 대한 설교, 전도에 대한 설교, 봉사에 대한 설교 등 여러가지 설교가 있습니다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고 성령의 교통하심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와 사랑과 교통하심을 계속 대대로 전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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