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유다서(25)


3.6.2. 그러면 믿음이 가져다 주는 복과 은혜는 무엇일까요? 죄사함을 얻습니다(마 9:2; 요 3:18; 행 10:43). 구원을 얻습니다(막 16:16; 행 16:31; 고전 1:21). 정결케 됩니다(행 15:9). 의롭다함을 받습니다(롬 3:22, 28; 빌 3:9). 거룩하게 됩니다(행 26:18). 죽음에서 자유케 됩니다(요 11:25-26). 어두움에 거하지 않습니다(요 12:46). 생명을 얻습니다(요 20:31). 영생을 얻습니다(요 3:15-16; 딤전 1:16).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요 1:12; 롬 8:14-15). 그리스도가 내주하게 됩니다(엡 3:17). 성령의 인치심을 받습니다(엡 1:13).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보존됩니다(요 10:26-29; 벧전 1:5). 약속과 유업을 받습니다다(행 26:18; 히 6:12; 11:33). 하나님께 나아갑니다(엡 3:12). 하나님과 화평을 누립니다(롬 5:1). 하나님과 동거합니다(요일 4:15-16). 성령을 받습니다(요 7:38-39; 갈 3:2). 영적으로 성장합니다(엡 4:13).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롬 9:33; 10:11; 벧전 2:6). 참사랑을 행합닏다(딤전 1:5). 핍박을 이깁니다(히 11:33-34). 승리를 얻습니다(롬 8:35, 37; 요일 5:4-5). 기쁨과 희락과 평강과 위로를 얻습니다(롬 1:12; 15:13; 벧전 1:8). 안식과 소망을 얻습니다(갈 5:5; 히 4:3; 벧전 1:21). 심판받지 않습니다(요 3:18).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습니다(골 2:12).

그렇다면 이런 믿음이 없는 자의 결국은 어떻습니까? 정죄를 받습니다(막 16:16; 요 3:18). 하나님의 진노를 삽니다(시 78:20-22). 심판받습니다(딤전 5:12). 죄 가운데 죽습니다(요 8:24). 실족합니다(벧전 2:7-8). 거짓 교훈을 따릅니다(딤전 4:1-3). 굳게 서지 못합니다(사 7:8-9).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집니다(롬 11:20; 히 3:12).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민 20:12; 신 1:32-25; 히 3:18-19). 하나님께서 멸하십니다(유 1:5). 하나님 앞에서 제함을 받습니다(왕하 17:14, 18; 시 106:27). 둘째 사망에 이릅니다(계 21:8).

좀 길지만 라이프성경사전에 나와있는 믿음에 대한 내용을 옮겨보았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군요. 한번쯤은 이런 정리가 필요할 듯해서 인용했습니다.

3.7. 공통의 구원, 즉 같은 믿음, 하나의 믿음이 뭐길래 유다가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했을까요? 믿음은, 특히 ‘단번에’ 주신 믿음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로부터 전해진 크리스천의 믿음의 내용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입장에서 지불하신 속죄의 죽음, 그리스도의 부활,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한 구원, 그리스도의 재림 등을 말합니다. 특히 유다의 입장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흘러나오는 거룩한 생활이 믿음입니다. 

유다는 원래 ‘공통의 구원’에 대한 긍정적인 편지를 쓰려고 했지만, 양떼를 위협하는 늑대들로 초점을 바꾸었습니다. 그것도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라’는 낱말까지 사용하면서 말입니다. 이 ‘싸우다(contend)’는 낱말은 ‘철두철미한 노력을 행사하여 분투하다’라는 뜻입니다. 라틴어의 강조접두사 con과 ‘뻗다(stretch)’라는 뜻의 라틴어 tendere가 결합되어 ‘뻗치다(stretch out),’ 또는 ‘분투하다(strive after)’이라는 contendere에서 나온 낱말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해 모든 힘을 쏟는 선수처럼, 싸우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운동 경기를 보고 영감을 받아 그렇게 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12절에서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Timothy)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합니다 싸우기는 싸우되 특히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딤전 6:11)” 싸우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절실했기에, 구원에 관하여 편지하려는 생각을 접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주제로 바꾸었을까요? 그리고 유다는 그런 편지로 성도들을 권하여야 할(compelled to write and urge) 필요를 느꼈다고까지 말합니다. 무엇이 급하고 위기감을 느꼈길래, 예수님의 친동생이자 초대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가 왜 이렇게 급하게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편지를 써야만 했을까요? 얼마나 급하고 중대한 일이 일어났을까요?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유다서(100)

18.2. 이 마지막 때에 경건하지 않은 욕망을 따르며 조롱하는 자들(mockers[KJV, NASB], scoffers[NIV, ESV])이 있을 것입니다. ‘조롱(嘲弄)하다’는 ‘비웃거나 깔보면서 놀리다’라는 뜻입니다. 개역한글판은 ‘기롱(譏弄)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기롱하다’는 ‘실없는 말로 놀리다’라는 뜻입니다. 조롱을 성경에서 검색해 보니 많은 구절이 나왔습니다. 그 중에 몇 구절을 옮깁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잠 30:17) 상상하시겠습니까? 저는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아버지를 비웃고 깔보면서 놀리면, 아버지를 실업는 말로 놀리면, 그렇게 조롱하는 자식의 눈이 까마귀에게 쪼인답니다. 독수리가 와서 그 시체의 살점을 새끼에게 먹이로 준답니다. 거의 공포영화 수준입니다.  ,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 (잠 17:5)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잠 14:31)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먹을 것이 없어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는데, 비웃음까지 당합니다. 버스비가 없어서 부르튼 발을 끌며 걸어가는데, 깔보는 시선까지 느껴집니다. 자식을 학원에 보낼 돈이 없어서 한숨만 내쉬고 있는데, 놀림을 받습니다.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Édouard Manet, Jesus Mocked by the Soldiers, c. 1865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

유다서(106)

19.2. … 육에 속한 자며 ... 조금 전의 갈라디아서 목록(갈 5:19-21)에 있는 것처럼 거짓 선생들은 육에 속한 자들입니다. 시기와 분열을 일으키는 이들은 육에 속한 자들입니다. 단순한 본능(mere natural instincts)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약 3:14-16) 육에 속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쓰디쓴 시기심(독한 시기, bitter envy)이 있습니다. 이기적인 야망(다툼, selfish ambition)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설령 이런 것들이 있더라도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할텐데, 이들은 그런 마음을 자랑합니다. 이들은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합니다. 진리를 부인합니다. 그리고 그 거짓을 지혜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 거짓 지혜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이 땅 위의 것이며, 영적이지 않으며(정욕의 것, unspiritual), 귀신의 것입니다. 이런 시기와 야망이 있는 곳에는 무질서(혼란, disorder)와 모든 악한 일(every vile practice)이 있을 뿐입니다. 하늘의 것은 진리이며, 땅의 것은 거짓입니다. 위에서도 인용했지만, 야고보 사도의 다음 구절을 다시 적어 봅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 3:17-18)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모든 사도는 아래의 것과 위의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땅의 것과 하늘의 것을 분명히 나누고 있습니다. 성결(pure), 화평(peaceable), 관용(gentle), 양순(op...

유다서(114)

25.2.2. 위엄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지위와 존엄,’ ‘탁월한 명성,’ ‘초월적인 주권’ 등을 뜻합니다(출 23:27; 에 1:4; 사 33:21; 행 9:27; 유 1:25). 성경에서는 대부분 하나님과 관련해 사용되며, 주로 ‘영광,’ ‘존귀’와 함께 표현됩니다(신 5:24; 대상 16:27). 개역개정판에서는 ‘지극히 크신 이’(히 1:3; 8:1)로도 번역하였습니다. 서양에서는 왕을 부를 때 ‘폐하(Your Majesty)’라고 부릅니다. majesty는 라틴어 maiestas에서 왔는데. ‘당당함, 큼, 대단함(greatness)’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위엄이 있는 분은 홀로이신 하나님이십니다.  25.2.3. 권력(power)은 남을 복종케 하는 힘으로, 왕의 권력(왕하 13:8), 군사력(삿 8:21), 재물이나 보화(스 4:23) 등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 권력의 유한함을 지적하면서(렘 17:5) 참된 권력은 오직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벧전 5:11). ESV에서 번역한 dominion(통치(統治))을 찾아보았습니다.  통치는 지배자가 주권을 행사하여 국토와 국민을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최고의 통치자이며(출 15:18; 시 103:19), 이 모든 세상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 의와 공평으로 다스려진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삿 5:11; 대상 16:31; 시 93:1; 145:13). 그리고 이 세상을 의와 공평으로 영원히 다스릴 메시야의 통치를 약속하고 있습니다(사 32:1; 슥 6:12-13; 마 2:6; 계 11:15). 세상 모든 통치자는 최고의 권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은 존재로서(롬 13:1), 정의를 행하고 선을 장려하며 악을 징벌하여 백성이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통치할 책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벧전 2:13). 따라서 성경은 통치자에게 순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딤전 2:1-3). 물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