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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23)


3.5. 모세와 불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가 쓴 <유대고대사(The Antiquities of the Jews)>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습니다. 모세가 에디오피아인들과 싸운 경위의 일부분을 옮깁니다. 

모세가 이집트의 왕궁에서 왕자로 있었을 때 에디오피아인들이 이집트를 침략해서 이집트인들의 재산을 약탈해 갔습니다. 이에 이집트인들은 모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집트의 서기관들은 모세의 용맹으로 적을 물리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모세가 전사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기뻐했으나, 히브리인들의 서기관들은 장차 모세가 그들의 장군이 되면 이집트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기뻐했습니다. 모세는 적들이 그의 공격을 알아차리기 전에 군대를 거느리고 적들을 저지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수로가 아니라 육로로 행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육로로 행군하면서 그의 지혜가 매우 뛰어남을 실증해 보여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뱀이 많았기 때문에 (이곳 뱀은 다른 지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번식력이 뛰어나며 독성이 특히 강한 데다 보기에도 유달리 흉측해 보였습니다. 어떤 뱀은 눈에 띄지 않게 땅에 숨어 있다가 솟아 올라 공중을 날아 부지중에 사람을 덮쳐 해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육로로 통과하기가 어려운데, 모세는 군대가 해를 입지 않도록 무사하게 보호하는 멋진 계책을 창안해 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사초(sedge)로 방주 모양의 바구니를 만들고 그 속에 이베스(ibes)라는 새들을 담아 들고 갔습니다. 이 새는 뱀들에게는 최대의 천적인데, 이 새들이 접근하면 뱀들은 도망을 쳤습니다. 뱀들은 도망을 치다가 이베스에 의해 잡혀 먹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베스는 길들여진 동물이며 단지 뱀 종류에게만 해를 끼쳤습니다. 모세는 이런 뱀들이 서식하는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이베스를 풀어 놓아 뱀들을 물리쳤고 군대가 그 지역을 통과할 때까지 이베스를 이용했습니다. 결국 모세는 이렇게 행군을 거듭해 에디오피아인들이 예상하기도 전에 습격했습니다. 모세는 그들을 격퇴시키고 이집트를 정복하겠다는 그들의 기대를 무산시키고 그들의 도시를 점령하고 에디오피아인들을 수없이 살륙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모세 덕분에 이런 대승을 하자 추격의 끈을 늦추지 않고 에디오피아인들이 노예로 전락할 위험에 놓이기까지 공격하였으며 온갖 파괴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기록이 맞다면, 모르긴 몰라도 3,500년 전에는 맹독을 가진 뱀들이 광야에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물었겠지요. 요세푸스의 기록이 맞지 않다 하더라도,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뱀이 나타난 것은 사실입니다. 

어쨌거나, 그 뱀에 물려 온 몸에 독이 퍼져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습니다. 물린 곳을 아무리 쥐어짜고 독을 입으로 뽑아내어도 효과가 없습니다. 그저 속절없이 죽음만 기다릴 뿐입니다. 그 광야에 무슨 병원이 있으며, 의원이 있었겠습니까? 천하의 모세인들 무슨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죽어가는 이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방법도 없는 모세를 생각해보셨습니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간구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 뿐입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의 긍휼과 평강과 사랑을 만듭니다. 여하튼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많으신(유 2)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온 회중에게 전합니다. “누구든지 뱀에 물린 사람은 이 장대 위의 불뱀을 보시오.” 입으로 고름을 빨던 자가 눈을 들어 그것을 봅니다. 공상과학영화처럼 물린 부위가 서서히 아물더니 몸과 마음이 가뿐해집니다. 막 운명하려던 자가 겨우 정신을 차려 자리에 누운채 그것을 봅니다. 상처가 말끔히 낫습니다. 뱀에게 물린 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꾸만 수그리는 아이의 고개를 어머니 자신의 손으로 받치고 자꾸만 감기는 그 아이의 눈을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직접 뜨게 해서 바라보게 합니다. 아이가 순식간에 방긋방긋 웃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수아는 여기저기 뛰어 다니면서 힘이 없는 노약자들을 도와줍니다. 그래서 구급차에 막대기와 뱀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모양입니다. 

The Star of Life represents emergency medical services.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을 때는 아픈 것만 치료되었습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지요. 뱀에 물린 것으로부터 치료를 받았지만 말입니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불뱀의 상징인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들이 불뱀을 쳐다보자 단번에 치료된 것처럼,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단번에 구원을 얻습니다. 한 사람만을 위한 단번의 믿음이 아닙니다. 모든 이들, 즉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모두에게 해당하는 믿음입니다. 단번에! 이 단번에(once for all)라는 말은 크리스천의 믿음의 정수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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