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으니, ...”
구원에 대한 편지를 쓰려다가 갑자기 믿음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를 씁니다. 유다는 그 믿음을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공동번역에는 ‘성도들에게 한번 결정적으로 전해진 그 믿음’이라고 기록합니다. 새번역에는 ‘성도들이 단번에 받은 그 믿음’이라고 기록합니다. ‘한번’ 또는 ‘단번에’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어설픈 저의 설명보다는 다음 구절들을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The Crucifixion. Christ on the Cross between two thieves. Illumination from the Vaux Passional, 16th century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히 7:27)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11-12)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 9:24-28)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히 10:1-4)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선포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히 10: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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