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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20)



A bumper sticker asking if one has found salvation

3.2.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아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질문 자체가 과거형이지요. 과연 그럴까요? 딴지를 걸 마음은 없습니다. 특별히 다음 구절들을 살펴볼까요?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롬 13:11)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벧전 1:5)

‘구원을 이루라(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빌 2:12),’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our salvation is nearer now than when we first believed; 롬 13:11),’  그리고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the coming of the salvation that is ready to be revealed in the last time; 벧전 1:5)’이라는 표현을 보면 현재의 구원과 미래의 구원도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구원, 현재의 구원, 그리고 미래의 구원이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라는 질문만 들어본 이유가 무엇일까요?

또 어떤 이들은 몇 년 몇 월 몇 일에 구원받았다고 자신있게 대답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시간까지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분들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하나는 부럽다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궁금증입니다. 부럽다는 것은 저의 믿음이 약하고, 아니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분들의 경지까지 도달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궁금하다는 것은 위의 구절들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예, 그냥 궁금할 뿐입니다. 이런 내용의 설교를 들어본 기억도 없습니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행 8:31)? 아둔한 제 자신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건 그렇고, 구원이라는 낱말 앞에 붙은 수식어가 재미있습니다. 개역개정은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이라고 하고, 새번역은 ‘우리가 함께 가진 구원,’ 공동번역은 ‘우리가 함께 받은 구원’이라고 합니다. NIV와 NRSV는 ‘우리가 공유한 구원(the salvation we share),’ NASB와 ESV는 ‘우리의 공통의 구원(our common salvation),’ KJV은 ‘공통의 구원(the common salvation),’ Message는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구원의 삶(this life of salvation that we have in common)’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공통의 구원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일까요? 유다는 원래 구원 교리를 일반적으로 다루려고 편지를 쓰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즉, 인간의 죄와 죄책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죄의 용서와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따르는 변화된 삶 등 말입니다. 모든 믿는 이들이 누리는 공통의 축복으로써 구원에 대해 편지를 쓰려고 했다는 말이지요. 그 목적은 아마도 믿는 이들 사이의 하나됨(unity)과 교제(fellowship)을 강조하고, 하나님께서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함이었던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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