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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19)


Ⅱ. 편지의 이유(3-4)
바뀐 주제(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으니, (유 3)

3.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던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 

구원(salvation)이 무엇입니까? 누군가가 우스개 소리로 십원의 십일조(tithe)인 일원을 하나님께 드리니 구원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건 한낱 우스개 소리일 뿐이고, 구원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봅니다. 역시 라이프성경사전을 참고합니다.

구원의 기본적인 뜻은 노예 상태나 곤란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건져내어 자유를 주는 행위, 또는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건져내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행위입니다. 구약 시대의 구원은 주로 어떠한 위험이나 악으로부터 ‘구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곧, 패전(출 15:2), 고통(시 34:6), 폭행(삼하 22:3), 조롱(시 57:3), 포로(시 106:47), 사망(시 6:4), 죄(겔 36:29)로부터의 구출입니다. 이 구원 행위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구체적으로 나타난 사건이 바로 출애굽이지요. 따라서 구약 시대 초기에 ‘구원’은 민족적인 성격이 우세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왕국 시대로 오면서 점차 선지자들에 의하여 구원의 개념이 확대되면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에 포함되었고(왕상 8:41-43; 사 52:10), 개인 차원에서의 구원도 점점 증가되었습니다. 곧, 구원은 집단적으로 민족 전체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난 중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남은 자, 곧 의인들에게만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더욱이 구약 시대 후반부로 오면서 메시야 사상이 발전하여 구원 개념은 점점 ‘죄로부터의 구원’과 ‘메시야 왕국의 도래’라는 개념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곧 구원자 메시야는 죄와 죄의 결과로부터 그 백성을 구원하는 분이라는 사상이 강하게 나타났습니다(사 52:13-53:12).


Crucifixion of Jesus of Nazareth, medieval illustration from the Hortus deliciarum of Herrad of Landsberg (12th century)

신약에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엡 2:13-18). 물론 질병이나 가난, 고통, 위험으로부터의 구원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나(마 9:21-22; 24:22; 막 5:23; 요 11:12; 행 4:9; 27:20), 이런 고통 역시 죄사함과 더불어 해결되는 사례들을 볼 때 결국 신약에서의 구원은 죄를 사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인간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보혈을 쏟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온전한 화목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롬 5:9). 그 결과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이라는 점에서 현세적이지만 동시에 세상 마지막 날 성도들이 천국에서 누리게 될 축복이라는 점에서 종말론적인 것이지요. 좀 어렵네요.

철저한 선민 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히브리인들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자신들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행 11:1-3), 특별히 율법이 제시한 법조문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상이 쌓은 의로운 행위가 자손들의 구원에 영향을 끼친다고도 생각하였지요. 그러나 에스겔이나 이사야 선지자는 구원이나 심판이 모두 개인 책임이며(겔 18:2-4), 결코 조상들의 공로나 과거의 선행으로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가르친 바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남은 자’만 구원얻는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단지 명분(이름)만의 종교인, 혈통만의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끝까지 지킨 자만이 구원과 승리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롬 9:27). 성경에서 ‘남은 자(remnant)’란, ‘죄인을 벌하시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면하게 하신 소수의 사람’을 가리키지요(사 10:20-23). 참고로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다’(미 2:12)는 표현은 시련을 통해 회개하고 깨끗해진 자들을 각지에서 모아 구원하실 것이라는 예언으로서, 메시야의 재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렘 31:8).

바울은 롬 8:29-30에서 성도의 구원을 다음과 같은 단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미리 아심(예지, 豫知) → 작정하심(예정, 豫定) → 부르심(소명, 召命) → 의롭다 하심(칭의, 稱義) → 거룩하게 하심(성화, 聖化) → 영화롭게 하심(영화, 榮化)의 단계로 묘사합니다. 여기까지는 라이프성경사전에 나타난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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