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좀 길어지지만, 사랑(love)도 찾아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최고 본질(요일 4:8, 16)과 기독교인의 가장 큰 덕목(고전 13:13)으로 제시되는 사랑은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필수적입니다(롬 13:8-10).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보여 주신 신적(神的)인 사랑이며, 자기를 돌보지 않고 이웃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요일 4:10). 따라서 모든 사랑은 그 근원을 하나님께 두어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이 사랑에 근거하여 성도는 이웃을 섬겨야 하며(갈 5:13), 거짓 없는 사랑을 해야 하고(롬 12:9),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요일 3:18). 이 모든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곧 사랑을 받는 대상이 누구인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베푸시는 사랑입니다. 특히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로 나타납니다(사 55:7). 이 사랑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고, 이스라엘의 변절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셨습니다.
심지어 징계를 할지라도 이는 당신께로 되돌려 원래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함이요, 징계하신 후에는 더 큰 사랑으로 위로하십니다. 곧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더 없이 깊고 확고하며,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범죄하는 백성을 이방(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지만 70년 후에는 다시 본토로 회복시키신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변함 없으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 준 사건입니다.
한편, 신약성경에서 하나님 사랑은 보다 구체적이고 풍성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하나님 사랑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요 3:16; 롬 8:37; 요일 4:9) 친히 병자를 고치시고(막 1:41; 눅 7:13), 죄인을 용서하시며(눅 15:11),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은 사람들을 사랑하되 죽기까지 사랑하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건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이 희생적인 사랑은 새 이스라엘인 교회와 성도에게 사랑의 모델이요, 본보기가 됩니다. 곧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와 사람이 피차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인간의 하나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선민 이스라엘은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했습니다(신 6:5). 구약에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 사랑은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신 10:12-13). 선민은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자발적으로 섬기고, 그 명령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막 12:28-34; 요 14:23). 하지만 인간의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구주로 주신 그리스도와 거룩하고 신령한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요일 4:14-18).
이웃 사랑: 이웃 사랑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 백성에게 보여 주신 사랑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신 사랑의 실천을 의미합니다(요일 4:10-12). 성경에서 곤궁한 이웃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말과 혀’로만 할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타내야 합니다(요일 3:18). 예수께서는 이에 더하여 원수조차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5:43-44). 우리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아무 조건 없이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과 은혜를 입었다면, 원수 사랑도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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