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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90)


16.1.3. ‘murmur’이란 단어는 ‘속삭이듯이 (드러내지 않고) 투덜거리다’라는 뜻입니다. 어떻습니까? 뱀이 하와를 꾈 때(창 3:1-5) 큰소리로 유혹했을까요? 사탄이 욥(Job)에 대해 하나님께 말할 때(욥 1:6-12; 2:1-6), 큰 소리로 말했을까요?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마 4:1-10; 눅 4:1-12), 천둥과 번개를 동반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Elias(Elijah) on Mount Horeb, Greek Orthodox icon.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엘리야]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 19:11-13)

갈멜산의 결투에서 승리를 쟁취한 천하의 엘리야가 어찌된 영문인지 이세벨(Jezebel)의 한마디에 겁을 먹고 도망가는 장면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지시한 하나님의 산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먼저 불어닥칩니다. 얼마나 크고 강했으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을까요? 그런데 그 바람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진이 일어났지만, 그 지진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불이 있었지만, 그 불 속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세미한 소리(a sound of a gentle blowing)가 들립니다. 비록 도망치는 중인 엘리야지만 그 미세한 소리에 뭔가를 감지하고(듣고), 경건한 경외심으로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동굴 어귀에 섭니다. 그 소리가 엘리야에게 말합니다. 

투덜거리는 이야기를 하는데 느닷없이 하나님의 미세한 소리가 왜 등장합니까? 사탄은 속임수와 흉내의 달인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부를 때 큰소리가 아닌 미세한 소리로 부르셨습니다. 사탄은 그것을 흉내내어 미세한 소리로 우리를 꾀어내는 것 같습니다. 마치 자기가 하나님인 양 말입니다. 만약 사탄이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귀에다 “이거 알아? 우리끼리 얘긴데…”라고 하면, 모르긴 몰라도 저는 아마 십중팔구 넘어갈 겁니다. 귀가 더 크게 열립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비밀 이야기는 거의 없고,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그것이 경건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속살거림에 쉽사리 넘어간다는 것이지요. 

또는 남이 아무 의미없이 중얼거리는 말도 귀에 들어옵니다. 귀가 쫑긋해지며 도대체 무슨 얘긴가 하고 몸이 기울어집니다. 바로 사탄이 노리는 것이겠지요. 포커페이스를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지나가는 말을 하는데, 그것이 원망과 불평의 속살거림입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한두 번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정말 쓸데 없는 얘긴데 괜히 밤잠을 설칩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밥먹다가도 생각이 납니다. 무시해야지 하면서도 문득문득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하나님의 미세한 소리와 사탄의 속살거림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3절에서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고 한 모양입니다. 적당히 싸워서 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단호하게 물리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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