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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46)


Hans Memling’s Last Judgment, 1467-1471, National Museum, Gdańsk

6.4.2. 심판의 장면을 한 번 읽어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슥 3:1-5)

이 장면은 대제사장 여호수아(Joshua the high priest)를 재판의 상대로 봅니다. 여호수아는 스룹바벨(Zerubbabel)과 함께 귀환했습니다(스 3:2; 5:2; 학 1:1). 여호와의 천사(the angel of the Lord)는 예수 그리스도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사탄에 의해 고소당합니다. 사탄은 법정에서 고발하는 자리인 오른쪽에 서 있습니다(시 109:6). 사탄은 “대적(adversary)”으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이 악의적인 대적은 이스라엘의 죄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주장하기 위해 여호와 앞에 서 있습니다. 재판(심판)의 상황이 심각합니다. 만약 여호수아의 혐의가 벗겨지면 이스라엘은 용납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거절당하면 이스라엘은 거부됩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책망하십니다(슥 3:2; 유 9).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말씀하신 그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비록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이지만(슥 3:2; 암 4:11), 하나님의 은총은 이스라엘 위에 임합니다. 죄 때문에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그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십니다(슥 3:4: 눅 15:22). 그뿐만이 아닙니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다고(I have taken away your sin) 말씀하십니다(슥 3:4). 그리고 깨끗한 터번(정결한 관, a clean turban)을 씌웁니다(슥 3:5). 대제사장의 복장 가운데 관(turban)에는 “여호와께 성결(Holy to the LORD)”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출 28:36-37; 39:30-3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의 나라로 회복시키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Rembrandt van Rijn,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c. 1661–1669. 262 cm × 205 cm. Hermitage Museum, Saint Petersburg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소망이 있습니다. 나의 죄가 크고 불에 타서 그슬린 나무가 되어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우리를 위한 용서와 회복을 구하십니다. 방탕한 둘째 아들이 돌아올 때,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는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죄를 제거하여 버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게다가 정결한 관까지 씌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수아는, 둘째 아들―그는 용서를 비는 말을 준비하고 연습까지 하면서 돌아옵니다만(눅 15:18-19), 아버지는 끝까지 듣지도 않으십니다(눅 15:21)―은, 그리고 나는 여호와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처분만 기다립니다. 사탄의 참소와 고발의 내용이 사실이니까요.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빌 마이어스(Bill Myers)라는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이며 작가가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 <Fire of Heaven>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 소설의 내용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사탄이 주인공을 몰아붙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전의 모든 쓰디 쓴 감정과 잘못된 행동과 생각들을 끄집어내어 주인공을 ‘살인자,’ ‘배신자,’ ‘창녀’ 등으로 몰아붙입니다. 주인공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입니다. 그저 그만두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합니다. 그럴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이니까요. 그 소설을 읽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스가랴서는 무엇이라고 기록합니까? 여호와의 천사,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호수아를, 둘째 아들을, 그리고 나를 변호해 주십니다. 그리스도보다 더 훌륭한 변호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재판장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둘째 아들의, 그리고 나의 죄를 제거하여 버리십니다. 할렐루야입니다! 아멘입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성결(정결한 관)이라는 선물도 주십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담이지만 빌 마이어스의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편인 <Blood of Heaven>과 2편인 <Threshold>와 함께 <Fire of Heaven>은 그 종결편입니다. 이왕 읽으시려면 차례대로(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사탄과의 싸움, 그리고 종말을 소설로 그려낸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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