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2. 다음 원망의 예를 민수기에서 찾아봅니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정탐한 다음 보고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민 14:1-5)
The Grapes of Canaan by James Tissot. Although the spies brought back a cluster of grapes so large that it took two men to carry it (Numbers 13:23), only two of the twelve brought back a good report of the land.
우리는 가나안 정탐 이야기를 압니다. 그러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에겐 첫 보고였습니다. 비록 눈의 아들 여호수아(Joshua the son of Nun)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Caleb the son of Jephunneh)이 믿음으로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고 외치지만(민 14:6-9), 그들에겐 청천벽력같은 보고였을 겁니다. 우리도 그런 경악스런 소식을 처음 듣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 번 몰아닥친 공포감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갑니다. 그리고 그 공포는 두 스파이를 돌로 쳐 죽이는 지경까지 갑니다(민 14:10).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민 14:10-12)
출애굽기 16장의 원망사건은, 어떤 면에서 보면, 애교(?)로 보아 넘길 수도 있습니다. 배고파서 투덜거리는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출애굽기 16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보이시며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민수기에서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항상 그러듯이, 제가 생각한 것을 말씀드립니다. 저는 먼저, “어느 때까지(how long)”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표현으로 보아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을 밥먹듯이 한 모양입니다. 출애굽한 이후부터 줄기차게,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꾸준히, 반복적으로 원망했던 모양입니다. 나는 어떤가요? 뭔가가 불편해서 처음 한두 번은 원망 아닌 원망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저는 그렇습니다. 뭔가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궁시렁거리면서 불평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것이 습관이 되고 나아가서 나의 성품을 형성합니다. 저도 어지간히 불평하는 편에 속합니다.
그리고 “멸시하겠느냐(treat me[God] with contempt)?”라는 말씀이 제 귀에 울립니다. 원망하는 것은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어떤 일에 대해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은 그 사람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의 지도자에게 원망하는 말과 행동을 하고(민 14:2), 공동체의 지체들에게 원망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민 14:10)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멸시하는 것(민 14:11)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습니다. 거꾸로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면, 나의 마음이 어떨까요? 누군가가 나를 멸시하면, 나의 마음이 어떨까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또한 “믿지 않겠느냐(refuse to believe in me[God])?”라는 질문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원망하는 것은 멸시하는 것이며, 동시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NIV에 따르면 믿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많은 이적을 행해셨음에도 나는 믿기를 거부합니다. 더 이상 무슨 변명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말씀, 즉 약속을 하십니다.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민 14:12)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나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멸시하고 믿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대적들]을 쳐서 멸하고 그들[대적들]보다 더 크고 더 강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나는 교회의 지도자들과 공동체의 지체들을 원망하고 멸시하고 믿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대적들]을 쳐서 멸하고 그들[대적들]보다 더 크고 더 강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물론, 원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들어갑니다. 출애굽한 1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습니다(민 14:21-38). 그리고 그 사이에 모세의 위대한 탄원이 있습니다(민 14:13-20). 저는 이런저런 어설픈 말로 지면을 가득 메꾸었지만, 사도 바울은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고전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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