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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88)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유 16)

16.1.1.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

거짓 선생들은 원망하는 자들(grumblers[NIV], murmurers[KJV])입니다. 

출애굽한 후 둘째 달 십오일의 사건입니다(출 16:1). 약 75일 정도 지났군요. 성경학자들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최소 200만 명 이상이라고 봅니다. 웬만한 중소도시 이상의 인구입니다. 출애굽한지 75일 정도가 지났으니, 그들이 준비했던 식량도 다 동이 났을 겁니다. 그래도 한편 생각해보면, 200만명 이상이 75일 동안 먹을 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얼마나 많은 식량을 애굽에서 가지고 나왔을까요? 그리고 다른 한편 생각해보건대, 원망(출 16:2)이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2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 굶어 죽게 되었다. 모세 어디있어? 왜 애굽에서 나오게 해서 이 고생을 시키냐? 그래도 애굽에 있었을 때는 굶지는 않았다. 모세 나와! 아론도 나와!” (출 16:3) 

그러자 하나님께서 하늘 양식을 주시겠다고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출 16:5).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출 16:6-10)

The Gathering of the Manna by James Tissot

출애굽기의 이 기록은 참 흥미롭습니다. 16장 6과 7절 그리고 8절이 묘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6절) /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8절), …”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7절) /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8절), …”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7절) /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8절).” 

“우리가 누구이기에(7절) / 우리가 누구냐(8절)?”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7절)? /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8절).” 

이렇게 맞물리는 것에 대한 신학적인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습니다(출 16:10). 그리고 해 질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빵)으로 배가 부를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출 16:12). 메추라기와 만나(manna)입니다. 만나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누군가가 계산한 것을 5.5.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원망하는 장면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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