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유다서(86)


14.4.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에녹의 예언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거룩한 천사들을 무수히 거느리고 오셔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때에 모든 불경건한 자들이 저지른 불경건한 행위와 불경건한 죄인들이 하느님을 거슬러 지껄인 무례한 말을 남김없이 다스려 그들을 단죄하실 것입니다. (유 14-15, 공동번역)

유다가 유다서를 쓸 때 당시 널리 읽혀졌던 에녹서를 참고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 에녹서가 우리가 읽는 정경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다서 자체도 이런저런 논란거리에 휘말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창세기에 에녹이 말했다는 예언도 없습니다. 항상 그러듯이 관주를 찾아가며 알아봅니다. 먼저 주님께서 거룩한 천사들을 무수히 거느리고 오시는(공동번역) 장면을 봅니다. 수많은 무리를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에는 그들을 위해 번쩍이는 불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신 33:1-3)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단 7:10)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8)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전 3:13)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살후 1:6-9)

2002년에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월드컵이 열렸습니다. 우리나라의 국가대표팀이 다른 나라와 경기할 때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응원했습니다. 서울 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또 촛불집회를 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신 적도 있을 겁니다. 사람들의 모임이 그러한데, 하물며 천사들이나 성도들의 모임이겠습니까? 저는 월드컵과 촛불집회를 예를 들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 또는 예수님이 천사들과 성도들의 무리와 함께 오시는 장면이 너무나 커서 상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크면 상상하기 힘들지요. 마치 너무 큰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우주의 크기가 너무 커서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저의 좁은 상상력으로는 번쩍이는 불(신 33:2), 강처럼 흘러 나오는 불(단 7:10), 하나님의 영광(막 8:38), 불꽃(살후 1:7) 등을 짐작하지 못하겠습니다. 월드컵이나 촛불집회 등이 오히려 작게 보인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유다서(102)

18.4. 베드로 사도에 의하면 조롱하는 내용이 이렇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 3:3-7) 역시 개역 개정판은 점잖게 옮겼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온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약속을 기다리던 선배들도 죽었고 모든 것이 창조 이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 않으냐?" (벧후 3:4, 공동번역)  오해하지 마십시오. 공동번역이 경박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위 공동번역의 구절을 빈정대는 감정으로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경위를 압니다. 엿새 동안의 창조에서 셋째 날의 창조 기록(창 1:9-13, 벧후 3:5)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아(Noah)때의 홍수 심판 사건(창 6:5-8:14)을 압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방주(方舟, ark)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방주의 히브리어 ‘테바’는 원래 ‘상자,’ ‘궤’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는 노아의 방주(창 6:14) 외에 모세가 나일 강물에 버려질 때 담겨진 ‘갈대 상자’를 뜻하기도 합니다(출 2:3, 5). 그리고 헬라어 ‘키보토스’는 ‘나무로 된 상자’(a wooden box), ‘궤’라는 뜻으로, 방주(마 24:38; 히 11:7; 벧전 3:20) 외에 언약궤(히 9:4; 계 11:19)를 일컫기도 합니다. 방주란,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대홍수를 피...

유다서(101)

18.3.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도 모욕과 희롱은 계속됩니다. Crucifixion, from the Buhl Altarpiece, a particularly large Gothic oil on panel painting from the 1490s.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마 27:35-44) 모든 왕의 왕에게 조롱의 홍포를 입힙니다. 모든 왕의 왕에게 조롱의 가시관을 씌웁니다. 모든 왕의 왕에게 조롱의 갈대를 쥐게 합니다. 모든 왕의 왕에게 조롱의 인사를 합니다. 모든 왕의 왕에게 그 왕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되뇌이며(마 27:42-43) 희롱합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대놓고 조롱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선심쓰는 척하며 이웃에게 조롱의 옷과 가시관과 갈대을 주지는 않습니까? 더 교묘한 방법으로 조롱의 인사, 글자그대로 가시가 돋힌 인사를 하지 않습니까? 이웃이 평소에 한 말을 그대로 되뇌면서 조롱하지 않습니까? 가난한 이웃의 고통을 같이 느끼지는 못할 망정, 어설픈 나의 잣대로 조롱하지 않습니까? 가난한 이웃의 서러움을 공...

유다서(119)

3. 오직 은혜(Sola Gratia):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를 덧입혀 주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이 인간 쪽에 아무런 조건을 찾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믿음"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며, "믿음"은 구원의 은혜를 받는 '통로' 역할을 할 뿐이며 그것의 '대가'로 구원을 받지는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몇 구절을 찾아봅니다. ‘은혜(헨, hen)’는 ‘호의를 베풀다,’ ‘불쌍히 여기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이시는 자비, 은혜, 사랑을 말합니다.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창 33:8)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출 33:12). Hebrew letters spelling Chesed 또 ‘은혜(헤세드, chesed)’의 기본 의미는 ‘바라다,’ ‘사랑하다’로,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은총이나 자비, 사랑, 긍휼을 말합니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창 21:23)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삼하 2:6)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