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유다서(82)


3. 거짓 선생들에 대한 예언된 멸망(14-16)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유 14-15)

14.1. 에녹서(The Book of Enoch)를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군요. 에녹서는 구약 외경 중에서 분량이 가장 많은 책으로 108장입니다. 원문은 히브리어로 생각되지만 현존하는 것은 에티오피아어(제1에녹서)로 기록된 것이고, 소수의 단편이 희랍어와 라틴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① 1~36장은 《노아서》의 것이 단편적으로 개입되어 있고, ② 37~71장은 비유와 비교(BC 105~64년), ③ 72~82장은 천계(BC 110년경), ④ 83~90장은 환상, 그리고 ⑤ 91~104장은 묵시 등입니다.

Figures God took Enoch.jpg
God took Enoch, as in Genesis 5:24: "And 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 longer, for God had taken him" (JP), illustration from the 1728 Figures de la Bible; illustrated by Gerard Hoet

내용은 심판의 날의 묘사, 천사론, 천상ㆍ지상ㆍ지하를 돌아다니는 에녹의 여행기, 기상학ㆍ천문학적 해설, 메시아론, 대홍수의 예언, 아담에서 메시아의 도래에 이르는 모든 역사의 상징적 언어에 의한 개관 등입니다. 본서는 쿰란 공동체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는데, 쿰란 공동체의 저작은 아닙니다. 특히 37~71장은 <사람의 아들>상을 포함한 메시아론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메시아론과 비교되어 있는데, 이를 3세기의 그리스도 교도의 손으로 되돌리는 유력한 설이 있습니다. 이 인자사상은 신약성서 저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인 택함을 받은 자라는 용어도 본서에 먼저 나와 있는 사상이라고 하는군요. 초대교회에서는 《에녹서》가 자주 읽혀졌고, 교부들도 이 책을 상당히 애용하여 많이 인용하였습니다. 

슬라브어 《에녹서》는 제2에녹서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원래 그리스어로 1~2세기에 기록된 별개의 문서입니다. 내용은 에티오피아어의 《에녹서》와 비슷하고, 저자는 이 문서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근래에는 제3에녹서가 연구되고 있습니다. 모두 묵시문학의 글이라고 하는군요.

에녹서는 다른 기독교 종파에서는 정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에티오피아 정교화에서는 인정되며 영감에 의해 쓰인 성경으로 봅니다,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마카베우스 시절인 약 기원전 160년경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정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문제는 신학자들에게 맡기고, 저는 성경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한때 저는 위경 또는 외경에 약간의 관심이 있었지만, 정경으로 확정된 성경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경인 성경 66권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외경이나 위경까지 알려고 하는 것이 일종의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유다서(103)

18.5.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 전에 비가 내렸을까요?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창 2:4-5).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지요(창 2:6). 그리고 홍수 심판의 창세기 6장까지 ‘비’라는 낱말은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노아를 비롯한 그 당시 사람들은 비라는 것을 몰랐을 겁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게는 중요하다기보다는 궁금증이 더 큽니다. 만약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다음과 같은 대화가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The Deluge, by John Martin, 1834. Oil on canvas. Yale University “이보게, 노아, 도대체 뭘 하는거야? 하루이틀도 아니고, 벌써 몇 년째 뭘 만드는거야?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 자네가 뭘 만드는지 아직도 모르겠군. ” “어이, 왔는가? 여호와께서 이 땅의 패역함을 보시고 심판하시겠다는군. 비를 내려서 홍수로 이 땅을 쓸어버리겠다고 하셨어.” “뭐? 패역? 심판? 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래 좋아. 우리가 좀 나쁘게 행동한 것은 인정하네. 아니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나? 그리고 자네 식솔들에겐 해를 끼치지 않았어. 그런데 무슨 심판? 그리고 뭐? 비? 그게 뭐야? 처음 듣는 말이군. 자네는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나?” “나도 잘 몰라. 여호와께서 홍수를 땅에 일으켜 땅에 있는 것들을 다 죽이겠다고 하셨을 뿐이야. 이 땅위의 저 하늘을 보게. 궁창의 물이 보이지? 그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 비가 아닐까 짐작하기만 할 뿐, 나도 자세한 것은 모르네. 그리고 나는 그분의 명령대로 이렇게 배를 만들고 있을 뿐이야. 이보게, 자네도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포악한 행동을 그만 하게.” “에이, 이 사람아. 저 위의 물이 쏟아진다고? 그렇다 하더라도 얼마나 되겠어? 저기 높...

유다서(106)

19.2. … 육에 속한 자며 ... 조금 전의 갈라디아서 목록(갈 5:19-21)에 있는 것처럼 거짓 선생들은 육에 속한 자들입니다. 시기와 분열을 일으키는 이들은 육에 속한 자들입니다. 단순한 본능(mere natural instincts)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약 3:14-16) 육에 속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쓰디쓴 시기심(독한 시기, bitter envy)이 있습니다. 이기적인 야망(다툼, selfish ambition)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설령 이런 것들이 있더라도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할텐데, 이들은 그런 마음을 자랑합니다. 이들은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합니다. 진리를 부인합니다. 그리고 그 거짓을 지혜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 거짓 지혜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이 땅 위의 것이며, 영적이지 않으며(정욕의 것, unspiritual), 귀신의 것입니다. 이런 시기와 야망이 있는 곳에는 무질서(혼란, disorder)와 모든 악한 일(every vile practice)이 있을 뿐입니다. 하늘의 것은 진리이며, 땅의 것은 거짓입니다. 위에서도 인용했지만, 야고보 사도의 다음 구절을 다시 적어 봅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 3:17-18)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모든 사도는 아래의 것과 위의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땅의 것과 하늘의 것을 분명히 나누고 있습니다. 성결(pure), 화평(peaceable), 관용(gentle), 양순(op...

유다서(11)

1.6. 조금만 더 생각해 봅니다. 저는 앞에서 부르는 것과 택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보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니  그 둘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본문이 좀 길지만 다 옮겨 봅니다. Parable of the Great Banquet by Brunswick Monogrammist (circa 1525), location: National Museum, Warsaw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 22:1-14) 왕자의 혼인은 아니지만, 여러분도 결혼식에 참석한 경우가 당연히 있을 줄 압니다. 그 결혼식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나라의 왕자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