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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79)


12.5. ...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

거짓 선생들에 대한 유다의 네 번째 은유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죽은 나무입니다. 뿌리까지 뽑힌 나무입니다. 당연히 열매가 있을 리가 없죠. 게다가 추운 계절이 시작되는 가을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 (마 15:13) 

거짓 선생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심으셨다면, 몰래 가만히 들어올 리가 없겠죠(유 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 13:24-30)

But while men slept, his enemy came and sowed tares., anonymous, c. 1900

원수, 거짓 선생들은 사람들이 잘 때에 몰래 와서 뿌립니다(마 13:25). 사탄은 잠도 자지 않는 모양입니다. 어지간히도 부지런합니다. 저는 가라지가 보이면 바로 뽑을 것이지 왜 추수할 때까지 기다릴까 의아했습니다. 어디서 들은 말인데, 곡식과 가라지의 뿌리가 땅 밑에서 서로 얽혀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힐 수 있답니다. 농부 입장에서는 빨리 처리할 수 없으니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곡식을 생각하면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어떻습니까? 내 생각대로, 계획대로 시원하게 뽑아버리고 싶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비록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지만, 그 곡식을 소중하게 생각하셔서 당분간 그대로 두십니다. 곡식이 다 자라서 익기도 전에 뽑힐 것을 걱정하십니다. 

저는 곡식을 우리 믿는 이들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밭에 심은 곡식 말입니다. 곡식만 있으면 천국을 누리며, 하나님게서 이른비와 늦은비를 적절하게 내리시고, 곡식을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곡식 입장에서도 답답할 겁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왜 쓸데없이 가라지가 와서 나의 성장을 방해하느냐고 말이죠. 주인을 믿고 기다립시다. 답답하지만 기다립시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이렇게 기다리자고 하는 것은 제가 제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주인은 그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즉 큰 날의 심판까지(유 6) 당분간 그대로 두십니다. 따지고 보면 곡식은 스스로를 추수할 수 없습니다.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갔으니 어쩔 수 없이 가라지와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가라지가 싫다고 발버둥쳐봤자 곡식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추수할 때가 되어야 비로서 판가름납니다. 주인이 마지막에 직접 판결하십니다(유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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