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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74)


Avarice (2012), by Jesus Solana

12.2.4. 경건조차 재정적인 이득의 수단(이익의 방도, a means of financial gain)으로 삼는 자들의 말로가 이렇습니다. 앞에서 발람의 예를 보았습니다. 

제가 빌 마이어스(Bill Myers)의 소설 <Fire of Heaven>을 말씀드렸지요? 그 소설 중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함을 받은 주인공 브랜든(Brandon)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받은 치유의 은사로 많은 사람을 치유하는 일을 합니다. 그 사역이 소문이 나자 한 텔레반젤리스트(televangelist, 텔레비전 전도사)가 접근합니다. 이 전도사는 매우 유명해서 큰 체육관 같은 곳에서 집회를 열고 TV로 미국 전역에 중계방송합니다. 브랜든은 이 작자와 엮이지 않으려고 하지만 아내인 새라(Sarah)가 우겨서 집회에 참석하여 치유의 기적을 베풀게 됩니다. 이 텔레반젤리스트―전도사가 아니라 아예 영화 배우 수준입니다―가 집회 시작할 때부터 설교를 하는데, 그 내용이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아니, 오히려 다원주의를 외칩니다. 얼핏 들으면 사랑의 하나님을 외치는 것 같은데, 그 사랑마저도 자기 편한대로 왜곡합니다. 급기야 그 설교를 듣다 못한 브랜든이 자기 차례가 아닌데도 무대 앞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하나님의 불이 쏟아집니다. 그 텔레반젤리스트를 꾸짖는 말들이 쏟아집니다. 그러자 그 텔레반젤리스트는 그대로 고꾸라져 반신불구가 됩니다. 

하나님이라는 진짜 주인과 돈이라는 거짓 주인 사이에서 비통함으로 찔리면서도, 다툼이 있음에도, 어떻게든 두 주인을 섬겨보려고 합니다. 좋은 게 좋다고 하면서 말이죠. 혹시 이쪽이 나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다른 쪽이 나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과 부처와 용왕과 모든 잡신들과 무당을 동급으로 놓는 영적 간음 말입니다. 가증스러움 말입니다. 

유일한 신… 과연 나는 ‘유일(唯一)’이라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면서 입술에서 내뱉을까요? 얼마나 생각하며 말할까요? 라이프성경사전은 ‘유일(唯一, only)’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유일’은 ‘다른 것은 없는 오직 하나,’ 존재론적 측면에서 ‘첫째’ 곧 여럿 가운데 ‘첫째’란 뜻이 아니라 다른 것이 없는 ‘오직 하나’란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주로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사 37:16; 막 12:29), 즉 많은 신들 가운데 한 분이 아니라 세상에 다른 신은 없고 오직 하나님만 홀로 존재하시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분이요, 홀로 영광받으실 첫째가 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시 35:17; 요 5:44; 17:3). 즉, 둘째(second)가 없는 첫째(first)라는 말이지요. 이에 해당하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first)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이 구절의 ‘먼저(first)’라는 낱말 대신에 ‘오직(only)’이라는 낱말을 넣어서 다시 한 번 읽어 봅시다. 바로 그것이 둘째 또는 셋째가 없는 첫째(유일)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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