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3.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친밀감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어떨까요? 그 친밀감에 더하여 경외심까지 있습니다. 피조물인 내가 지존자의 앞에 가면 갈수록, 친밀감은 더해질 것입니다. 많은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경건한 분들은 그 친밀감에 더해서 경외심을 느낍니다. 피조물과 하나님은 본질 자체가 다릅니다. 아무리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고 하더라도, 피조물은 피조물입니다.
Isaiah receives his vision of the Lord's house. A stained glass window at St. Matthew’s German 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Charleston, South Carolina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Isaiah)는 그것을 알았습니다(사 6:5). 거룩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가까이 가면 갈수록, 경외심은 더 깊어집니다. 따지고 보면 먼저 친밀감을 허락하시고 먼저 손을 내미신 것만으로도 나는 감지덕지입니다. 과연 나는 어떨까요? 아직 하나님과 친하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쥐고 계십니다.
그[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4-16)
하나님과 친합니까? 좋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조심스럽게 여기는 단계까지 가기를 원합니다. 시편 기자는 분명히 노래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시 2:11)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고(serve the LORD with fear) 그리고 떨면서 즐거워하라(rejoice with trembling).”고 노래합니다. 떨면서 즐거워하라? 떨고 있는데 즐거워할 수가 있겠습니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존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면, 조심스럽게 여기면, 떨면서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단계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시편 기자의 노래와 숱한 믿음의 선배들의 증언이 저의 노래가 되고 저의 증언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려움과 즐거움을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허락하시고 이루십니다. 다시 고백하지만, 저는 이 비밀을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사야가 알고 있던 그 비밀을 아직 모릅니다. 그러나… 저도 하나님과 친해지고 싶습니다. 더 친해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하나님을 조심스럽게 여기고 싶습니다. 저도 그 단계까지 이르고 싶습니다. 두려움과 즐거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 비밀을 알고 싶습니다. 알게 하소서. 그리고 믿게 하소서. 그래서 가인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요 14:6)을 따라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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