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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63)


11.2.2. 미가서의 이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시지요.

“높이 계시는 하느님 야훼께 예배를 드리려면, 무엇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까? 번제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까? 송아지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까? 숫양 몇 천 마리 바치면 야훼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거역하기만 하던 죄를 벗으려면, 맏아들이라도 바쳐야 합니까? 이 죽을 죄를 벗으려면, 이 몸에서 난 자식이라도 바쳐야 합니까?" 이 사람아, 야훼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자에게 앞길이 열린다. (미 6:6-8, 공동번역)

정의를 행하는 것을 ‘정의를 실천하는 일’로, 인자를 사랑하는 것을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로, 그리고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자에게 앞길이 열린다.’라는 표현이 더 있군요. 정말 오랫만에 듣는 말입니다. ‘어려워 한다.’ 옛날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어려워했던 적이 있습니까? 단순히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심스럽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경외(敬畏)’라는 낱말을 사용합니다. 라이프성경사전을 참고하여 ‘경외하다’를 살펴봅니다.

‘경외하다’의 기본 의미는 ‘두려워하다’ 또는 ‘떨다’이지만, 이는 무서운 존재에 대한 공포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인정하는 자가 가지는 거룩한 두려움, 곧 경건한 공경심을 일컫습니다. 따라서 ‘경외하다’는 말에는 ‘좋은 마음, 곧 존경하는 마음으로 삼가 조심하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느 7:2).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크고 놀라운 은혜와 복과 긍휼을 덧입혀 주십니다(시 103:13).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누릴 복을 살펴보면, ① 환난에서 건짐받는 축복(시 34:7, 9), ② 존귀하게 되는 축복(시 15:4), ③ 자손까지 형통하게 되는 축복(신 5:29), ④ 영혼이 늘 평안한 축복(시 25:12-13), ⑤ 늘 양식이 끊어지지 않는 축복(시 111:5), ⑥ 범사에 형통한 축복(시 128:1-4), ⑦ 소원을 성취하는 축복(시 145:19), ⑧ 기도 응답을 받는 축복(히 5:7), ⑨ 장수의 축복(잠 10:27), ⑩ 하나님이 그 이름을 기억하시는 축복(말 3:16), 그리고 ⑪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게 되는 축복(계 11:18) 등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은혜와 복을 누린 수없이 많은 믿음의 위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창 22:12; 욥 1:8; 시 5:7; 행 10:2; 히 11:7). 반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악과 재앙에 노출되어 있으나 보호받지 못하고(신 28:58-59; 렘 2:19), 잘 되는 것 같으나 결국에는 실패하며(전 8:13),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게 됩니다(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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