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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58)


9.6. 다른 잘못으로 책망을 받는 교회도 있지만, 여기서는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을 받아 책망받는 두 교회를 살펴보았습니다. 비록 안디바라는 순교자가 나온 버가모 교회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유다서에서 본 것처럼 사탄의 공격은 집요합니다. 순교자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사탄의 권좌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을 수 밖에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책망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책망하시면서도 피할 길(회개, 계 2:16)을 주시는 좋으신 분입니다. 

회개(悔改, repentance)는 이제까지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함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닙니다. 구약성경의 용어로는 나캄(nacham, 뉘우친다)과 슈브(shuv, 돌아선다)가 있고, 신약성경의 용어로는 메타노이아(metanoia, 마음의 변화)와 에피스트로페(행동의 변화)가 있다고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나캄’하기는 하지만(이마저도 항상은 아니지만) ‘슈브’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에피스트로페’하지만(그나마 잘 되지 않지만) ‘메타노이아’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메타노이아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그 결과로 나타나는 에피스트로페하기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 회개라는 것도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총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 곤고한(롬 7:24)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런 존재이기에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대하 7:14)

그리고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그들에게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고(계 2:25) 하십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세벨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는 믿음의 도(유 3)일 겁니다. 그리고 이기는 자에게 돌아가는 상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계 2:26)와 새벽 별(계 2:28)입니다. 거짓 선생들의 꾐에 넘어가지 않는 길은, 그리고 설령 귀가 솔깃할지라도 그것을 뿌리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리의 말씀을 잡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유다서의 저자인 유다는 거짓 선생들에 대해 낱낱이 파헤쳤고 파헤칠 것입니다. 그 거짓 선생들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이길 방법은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는 것”(유 3)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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