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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55)


9.3. 유대인의 전승이 어떠하든지 간에, 성경에 없으니 알 도리가 없습니다. ‘모세의 승천’이라는 외경을 참고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성경이 말한다는 성경의 내적 증거에 따라 이해애햐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관주성경을 좋아합니다. 예전의 우리말 성경에는 낱말마다 관주가 있었는데, 요즘 출판되는 성경책에는 관주가 없더군요. 있는데 제가 찾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요. 아쉽습니다.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이 신성시(?)하는 천사장 미가엘마저도 마귀와 다툴 때, 마귀에게 비방하는 말을 판결을 내리지 못합니다. 대신 “주께서 너를 꾸짖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합니다. 나는 어떤가요? 앞뒤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판결을 내리지 않습니까? 고민이 있어서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지체들과 이웃들에게 함부로 말하지는 않는지 생각해봅니다. 설령 그 판결이 선한 의도라고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서슬 시퍼런 칼날을 들이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내가 누구이길래 판결을 내린다는 말입니까? 

권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판결은 아닙니다. 물론 말로는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행동이 그렇게 나타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상대방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무시하거나, 더 나아가 집단으로 왕따시키는 일도 빈번합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그렇습니다. 그것도 성경이라는 잣대를 기준삼아서 이렇다라든지 저렇다라든지 하면서 말이지요. 가뜩이나 믿음이 약하거나 없는 이웃들에게, 그들이 생소하게 생각하는 성경의 잣대를 들이밀면서 판단하면, 그들의 마음이 열릴까요? 그들이 필요한 것은 같이 울어주고 같이 웃어주는 것뿐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나의 믿음은 보잘것 없고, 어떤 면에서는 믿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판단한단 말입니까? 판결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일입니다. 권면까지는 하되, 판결은 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처소를 떠나는 것입니다(유 6). 

따지고 보면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히 1:14). 그들은 우리 인간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았겠지요. 그런 천사들조차도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않습니다.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맡은 바 본분을 지킵시다. 우리의 처소를 떠나지 맙시다. 천사장인 미가엘조차 판결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벧후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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