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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54)


9.2. 하여간 그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툽니다. 우리는 9절의 내용을 모릅니다. 이리저리 검색해 보니, ‘모세의 승천(The Assumption of Moses)’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두산백과에 실린 이 책의 내용입니다.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헤로데스 대왕의 죽음과 BC 4년(또는 3년)에 일어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BC 4년(또는 3년), 혹은 그 직후에 팔레스타인에서 바리새파 혹은 에세네파 사람이 기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시다시피 모세는 BC 13세기경 이집트의 노예로 있던 히브리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해방시킨 지도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으며, 이른바 모세5경이라고 불리는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를 썼습니다. 

모세의 승천은 성서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위경으로, 모세가 죽기 직전 그의 입을 통하여 여호수아에게 모세 시대부터 메시아 시대까지의 이스라엘의 간략한 역사를 예언하거나 또는 교훈조로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와 정치의 유착을 인정하지 않으며, BC 168∼161년에 시리아군에게 대항하여 일으켰던 마카베오전쟁 이후 유대인을 다스린 마카베오 왕조의 지도자들을 비판하는데, 특히 마케베오 시대 이전과 이후의 제사장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헤로데스의 아들 시대에 이르러서는 그 내용의 구체성이 희박해집니다. 저자는 훗날 참된 유대교가 세력이 막강한 왕에게 핍박을 받게 되고, 이에 레위지파 중 한 사람이 나타나서 7명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함께 동굴로 들어가 죽자고 권할 것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신원(伸寃)해주고, 하나님 나라(유대 왕국)를 건설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모세의 승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보이지 않지만 다른 정황으로 볼 때 없어진 장들에서 승천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여러 부분에서 불완전한 점이 보이는 책입니다. 

Moses viewing the Promised Land, Deuteronomy 34:1–5 (Tissot)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갑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세의 죽음에 관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신 34:1-6)

사탄이 모세의 시체를 사악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가엘이 모세를 장사지냈기 때문에 이런 대립이 일어난 것 같다는 것이지요. 아마 사탄은 모세의 시체를 일종의 우상, 즉 이스라엘을 위한 숭배의 대상으로 사용하고자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미가엘을 보내셔서 모세의 시체를 확실히 묻게 하셨습니다. 이런 내용이 ‘모세의 승천’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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