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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52)


8.3. ... 권위를 업신여기며 ... 

그리고 거짓 선생은 권위를 업신여깁니다. 그리스도의 주님되심(lordship)이라는 권위를 거부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하였고, 지위를 지키지 않고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 그렇게 하였고, 소돔과 고모라 거주민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했으면, 원망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사람이라는 존재가 그런 모양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때를 그리워하는 장면이 가끔 나옵니다. 자신들을 핍박하고 강제 노동을 시키며 죽이기까지 하는 이집트 왕에게는 굽신거리면서도,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하나님에게는 목을 뻣뻣이 세웁니다.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나를 고발하고 나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사탄에게는 아무 소리 못하면서도, 그 잘못을 덮어주시고 정결하게 해주시는 그리스도 예수님께는 고개를 쳐들고 대들기도 합니다. 맡은 바 본분을 지켜야 할 터인데,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자리를 박차고 나가 사고칩니다.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가르침을 주셨건만, 소돔과 고모라의 거주민들은 이웃을 학대함으로써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했습니다. 차라리 소 닭보듯이 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이웃을 정죄하고, 이웃의 마음에 대못을 쾅쾅 박거나, 서슬 시퍼런 칼날을 들이댑니다. 그것도 신앙이라는 이름을 빌어서 말입니다.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세상 모든 일의 주도권은 하나님께서 쥐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권위를 업신여깁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벧후 2:9-11)

8.4. …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유다는 8절에서 한 가지를 더 언급합니다. 영광을 비방한다고 말입니다. 개역개정은 ‘영광을 비방한다’라고 점잖게(?) 옮깁니다. 새번역은 ‘영광스러운 존재들(또는 천사들)을 모독하고 있다’고 옮깁니다. 공동번역은 ‘영광스러운 천사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다’고 옮깁니다. NIV는 ‘하늘의 존재에게 마구 욕설을 퍼붓는다(heap abuse on celestial beings)’고 옮겼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거주민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천사들(창 19:1)에게 몹쓸 짓을 하려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벧후 2:10b) 

이들은 당돌했습니다(bold). 담대한 대상이 잘못되었습니다. 만유의 주재이며 창조주에게 당돌히 대들었습니다. 그들은 자긍했습니다(arrogant). 역시 대상이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건방졌습니다. 그들은 떨지 않았습니다(not afraid). 마찬가지입니다. 대상이 잘못되었습니다. 창조주 앞에서 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했습니다.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부으며,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떨지 않으면, 하나님을 바알 섬기듯이, 하나님을 무당 섬기듯이 할 수 없습니다. 상천하지에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당돌하고 건방지며 떨지도 않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나의 모습입니다. 

이 거짓 선생들은 자기들이 받은 꿈에 힘입어서(on the strength of their dreams) 그렇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의 꿈이 하나님의 꿈이라고, 자기의 의도가 하나님의 의도라고 굳게 믿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하나님의 꿈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드러나지 않습니까? 그들은 천상의 존재에게 당돌하게 대들며, 건방지며, 떨지도 않습니다.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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