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유다서(45)


6.4.1. 큰 날의 심판(the judgment of the great day). 

이것은 모든 귀신과 사탄이 “불못(lake of fire)”에 영원히 가두어지는 마지막 심판을 일컫습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마 25:41)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 20:10)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 20:15)

Stefan Lochner, Last Judgment, c. 1435. Wallraf-Richartz Museum, Cologne

여기서 역시 라이프성경사전을 참고하여 심판에 대해 알아봅니다. 심판(審判, judgment)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선악간에 판단을 내리는 일(히 9:27)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징벌과 관련된 재난 혹은 만물의 심판자로서 하나님의 선고 등에 대해 언급됩니다(잠 19:29; 전 12:14; 미 7:9; 마 5:21; 살후 1:5). 이미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의 대홍수(창 6-8장)나 이집트에 내려진 10가지 재앙들(출 6-12장)을 통해 심판의 전형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심판은 이스라엘 백성이라 하여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저버리고 계속해서 회개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범죄와 심판, 회개와 구원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더욱이 우상을 숭배하며 택한 백성을 압제하는 이방 나라들도 예외없이 하나님의 심판의 칼날 아래 놓였습니다(사 34:5; 렘 48:21). 심판의 원인에 대해 성경은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롬 3:23)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롬 3:19-20).

이렇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임하는 때를 가리켜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날(사 2:12; 호 5:8-9; 암 5:18),’ 신약에서는 ‘주의 날(마 10:15; 벧후 3:7; 요일 4:17),’ ‘진노의 날(롬 2:5)’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날에는 모든 불의한 자(살후 2:12; 벧전 2:9), 범죄하는 자(히 10:26-27), 경건치 못한 자(벧후 3:7), 믿음에서 떠난 자(딤전 5:12), 우상 숭배자(렘 1:16), 형제를 업신여기거나 판단하는 자(롬 14:10), 심지어는 죄를 짓고 이미 죽은 자(딤후 4:1), 적그리스도(살후 2:1-12), 타락한 천사와 마귀들(벧후 2:4; 유 1:6)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심판에서는 의로운 자나 성도들도 예외가 아닙니다(딤후 4:1; 히 12:23). 하지만 불신자와 신자의 심판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불의한 자들은 이미 예고된 영원한 파멸(지옥)에 들어갈 심판이 이루어지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심판대 앞에 서기는 하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심판이요, 그 행위에 따른 상급을 확인받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마 25:31-46). 사도 바울의 고백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1, 31-39). 그래서 사도 요한은 ‘저를 믿는 자는 (멸망의) 심판을 받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요 3:16-18).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유다서(10)

Miraculous catch of fish 1.5.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불러준다는 것은 너무나도 기분 좋은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누군가가 따뜻한 음성으로 나의 이름을 부릅니다. 내가 고민하고 번민할 때, 어찌 할 바를 몰라 두 손 놓고 멍하니 있을 때, 무서워 발걸음을 뗄 수가 없을 때, 두려워서 무릎이 덜덜 떨릴 때, 간담이 다 녹아내릴 때, 번뇌로 내 가슴이 검은 숯덩이가 되어 정신이 아득할 때, 그 숯덩이가 다 타서 허연 재만 남았을 때,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졌다고 생각될 때, 나같은 사람이 살아서 뭘 하겠느냐고 자포자기할 때, 그 어디를 바라보아도 구원의 손길은 다가오지 않을 때, 어디에 소망을 두어야 할 지 전혀 모를 때, 완전한 흑암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내 자신이 나의 존재를 부정할 때, 누군가가 나즈막한 소리로 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창조주, 가장 완벽하시고 온전하시고 완전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그 분의 존재 안에서 격려하시고, 등을 토닥거려 주시고, 얼싸안아 주신다는 것은 더할 나위없이 황홀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실패하고, 아니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지만, 더 나아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결국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눅 15:11-32)처럼 실제로 떠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르십니다. 나는 나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존재를 인정하십니다. 매일 매순간 나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르십니다. 왜 간섭하느냐고 원망 아닌 원망을 할 때도, 죄의 무게에 짓눌려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울먹거리며 말할 때도, 하나님은 나를 부르십니다. 나를 인정해 주십니다.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그분께서 “괜찮다.”고 하시면서 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십니다. 좁은 생각이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부르심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

유다서(51)

8.2. … 육체를 더럽히며, ...  육체를 더럽힙니다(defile the flesh[KJV], pollute their own bodies[NIV]). 앞에서 보았지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관계를 맺어 육체를 더럽혔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거주민들이 다른 신을 따라가며 섬기고 절하면서 육체를 더럽혔습니다. 이단들의 뉴스를 들으면 가끔 그런 뉴스까지 들립니다. 연약한 여인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것 말입니다.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가장 약한 자들 중의 하나인 여인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 말입니다. 이단 뿐만 아니라 쥐꼬리만한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도 그런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치 않고 합니다. 요즘 말로 갑질한다고 하죠. 약자들을 그냥 두어도 모자랄 판에 갑질합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9-10)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쓴 편지입니다. 앞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좋겠지만, 최소한 이 구절에 의하면, 음행(sexual immorality), 우상 숭배(idolatry), 간음(adultery), 탐색(male prostitution), 남색(homesexual offend), 도적(thievery), 탐욕(greed), 술취함(drunkenness), 모욕(slander), 속여 빼앗음(사기, swindle) 등은 사악한 것들(불의, wickedness)입니다. 모두 육체를 더럽히는 데 앞장서는 것들입니다. 이런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거짓 선생들의 이러한 미혹을 받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위에서 빌 마이어스(...

유다서(9)

1.4.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유다서 1절 하반절에서 유다는 자신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을 밝힙니다. 부르심을 받은자? 누구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일까요? 그리고 그 부른 이는 무엇때문에 불렀을까요?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겁니다. 그리고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뭔가 할 이야기가 있고 시키실 일이 있어서 부르셨을 겁니다. 그리고 부르심을 받은 자는 사랑을 얻은 자입니다. 내가 사랑을 주는 주체가 아닙니다. 나는 사랑을 얻는 입장(beloved)입니다. 어디에서 사랑을 얻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in God the Father)입니다. 저는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하면 저에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구절이 바로 그 유명한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도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이 로마서 8장 28절의 구절이 너무나 아름답게 들리지만, 좁은 저의 생각으로는 동시에 너무나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말인데, 과연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네 마음(heart)을 다하고 목숨(soul)을 다하고 뜻(mind)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너는 마음(heart)을 다하고 뜻(soul)을 다하고 힘(strength)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5)  다시 말해 너의 모든 것으로, 너의 모든 됨됨이로, 너의 모든 존재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겠지요. 모든 존재는 커녕 일부분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