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천사라도 자기의 본분을 떠나 엉뚱한 일을 하면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어집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 6:1-3)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the sons of God)”을 천사들로 이해했는데, 이들이 사람의 딸들, 즉 여자들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는 것까지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 동기가 재미있습니다.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좋아하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기독교는 보는 종교가 아니라 듣는 종교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예배당에 조각상이나 그림이 걸려있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가톨릭 교회와는 사뭇 다르지요. 그래서인지 교회음악이 음악의 한 장르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성경 도처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은 “들어라.”였습니다. 하와가 뱀의 꾐에 빠진 일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The Fall of Man by Peter Paul Rubens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 3:6)
하와는 그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전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조치를 취하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6-17)
명하여 이르셨습니다(commanded). 즉, 말씀하셨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설교를 보는 것이 아니라 듣습니다. 우리는 성경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습니다. 그래서 “귀 있는 자는 들어라.”라고 하십니다. 너무나 많은 구절이 있기에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듣는 데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듣기 원하는 것(what I want to listen to)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내가 들어야 할 것(what I need to listen to)을 듣는 것입니다. 나는 어떨까요? 나는 내가 듣기 좋아하는 것만 듣습니까? 아니면 듣기 싫어도, 듣기에 거북해도 들어야 할 것을 듣습니까? 소위 말하는 모범답안은 다 아실 겁니다. 모범답안은 알지만 정작 내 귀에 듣기 싫은 말이 들리면 고개를 돌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담이 죄에 넘어간 이후로부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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